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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04. 2024

결국 아버지의 칼에 베이고 말았다.  

3화 아무 감각 없이 솟구치는 피를 바라만 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모든 동작과 숨소리마저 멈추고 칼날을 바라보았다. 치열하게 싸우던 부모님 사이로 갑자기 찾아온 정요와 동시에 내 허벅지의 살점이 벌어졌다. 난 역겹게 벌어진 피부 사이로 천천히 헤엄쳐 오르는 피를 바라만 보았다. 피가 솟구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세면대 밖으로 넘치는 수돗물처럼 콸콸 흘렀다. 인간의 몸에 그렇게 많은 피가 존재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따듯한 감촉이 종아리까지 흥건히 적셨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야!!! 개새끼야!!!』 어머니는 급히 아버지를 밀치고 다가와 내 허벅지와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씨발놈아! 이젠 니 애새끼한테도 칼질이야! 나가 죽어!!』 어머니의 표정은 부아로 일그러졌으나, 그 눈빛에는 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위험을 모면했다는 환희와 안념이 가득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고대하는 사람처럼,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기회에 아버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싶어 했다. 고통과 두려움에 혼절한 나의 통곡을 기대했던 것이다. 난 그 눈빛을 재빨리 읽었다. 억지로 서러운 눈물을 짜냈다. 아버지는 당황하며 뒤로 주춤했다. 그때야 어머니는 나를 들춰 업고 나가, 숨 가쁘게 달려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도 택시 기사는 아이의 피로 좌석이 얼룩질지 하는 걱정이나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차를 몰았다.


J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를 다루듯 긴박했지만, 의료진은 별일 아니란 듯 차분히 내 인적 사항을 받아 적었다. 기사가 떠난 후,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곧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침상 옆에 서서 바늘을 꺼냈다. 칼날이 허벅지를 한 뼘이나 가를 때도 아프지 않았지만, 그 작은 바늘은 왜인지 바라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온몸을 비틀며 치료를 거부했다. 『네가 그렇게 움직이면 꿰맬 수가 없잖아. 계속 피나고 싶어? 더 아파질 텐데?』 의사의 일리 있는 협박에 이를 악물었다. 그가 쥔 바늘이 예리하게 피부를 가로질렀다. 아프지는 않았다. 봉합이 마무리되고, 의료진이 퇴원 지시를 내렸다.


『성희는 입원해야 해요! 이 상태로 어떻게 집에 가라는 거예요!』 어머니는 격양된 상태로, 팔짝 뛰며 거부했다. 의사는 입원 치료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며, 여러 번 어기차게 귀가를 권유했다. 『이대로 돌아갔다 잘못되면 책임지실래요?! 하루라도 입원시켜 주세요!』 어머니는 계속해서 억지 부리며 언쟁을 자아냈다. 정말 나를 걱정한 걸까, 단지  괴물에게 돌아가기 싫었을까? 아니면, 그의 가슴에 죄책감을 단단히 못 박으려 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분명히 서둘러 돌아가고는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퇴원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로 인계할 수밖에 없어요.』 의사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는 결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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