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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05. 2024

1996년 남동생 서우의 탄생

5화 그리고 옆집 개


1996년 여름, 남동생 서우가 태어났다. 그 작은 얼굴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항상 그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며,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기도 했다. 때때로 그의 울음소리가 귀를 찌르는 듯했지만, 젖병을 입에 물리는 순간 그의 얼굴엔 극락의 평화로움이 피어났다. 천사의 모습보다 더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그토록 고귀한 존재의 소유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자주 서로를 비난하며, 크게 다투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와 서우를 데리고 옆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서우를 안고, 옆집 아주머니와 즐겁게 이야기 나누었다. 그 사이, 나는 그 집의 요크셔테리어에게 관심을 보였다. 『멍멍아, 예쁘지, 이리 와.』서툴지만 상냥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개는 나를 조금도 반기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애써 내민 손끝에 거부당한 사랑은 곧 증오가 되었다. 나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손바닥으로 개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왈왈! 왈!!


『으앙! — 어머! 얘가 사람 안 무는데, 왜 이랬지? 미안해 새댁. —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성희가 강아지를 귀찮게 했나 봐요. — 그래, 다음부턴 내가 조심시킬 게 내일 또 와. 딸내미 아팠지? 다 울고 엄마한테 이거 깎아 달라고 해서 먹어. 알았지?』  

개는 반격으로 정확히 내 배꼽을 물었다. 피가 났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거부당한 마음의 상처가 쓰라렸다. 아주머니는 연신 사과하면서, 그에 걸맞게 새빨간 사과를 하나 건넸다. 집으로 돌아가서 달콤한 사과를 맛보니 다친 마음은 어느새 다 나아있었다.


『새댁 왔어~? 딸내미 왔어~?』 다음 날, 어머니는 우리를 다시 옆집으로 데려갔다. 아주머니는 개를 얼른 다른 방에 가둔 뒤, 어머니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그녀들의 눈치를 살피며, 몰래 개가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순간, 나와 그 개 사이에 묘한 에너지가 감돌았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방해꾼이 없는지 확인한 후, 외나무다리를 걷듯 팽팽한 긴장 속에 그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레 개를 안아 들었다. 나의 강렬한 시선과 눈도 깜빡거리지 않는 응시에 개는 운명을 직감한 듯 고개를 돌려 시선 교환을 회피했지만, 그의 체온이 상승하고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깨갱 깽 갱께 갱께 깨갱 깽 깽깽!!!


『뭐야! 무슨 소리야!』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급히 달려왔다. 그때 개는 콧등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방 한가운데에 멀뚱히 앉은 나와, 겁에 질려 몸을 웅크리고 떠는 개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나는 까르르 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살피던 어머니의 아래턱이 느슨하게 벌어진 채 굳어버렸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동자만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내 입가에 묻은 피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 보였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여러 번 굽실거리며 용서를 빌었다. — 밤이 되어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옆집 아주머니가 곧바로 쫓아왔다. 그녀는 진정한 사과와 개의 치료비를 요구했다. 그 이유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심하게 다투었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개를 만날 수 없었다.


이처럼 교활한 술수로 꾸며진 사건들 중에서도 조금 귀엽게 느껴지는 일화가 있다면, 바로 시장의 떡집과 두부가게에 대한 내 사랑이었다. 어머니와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몰래 어머니 곁을 떠나 두부가게로 향했다. 그곳에서 두부 한 판을 철저히 손가락으로 파헤치곤 했다. 떡집에 가면 좌판 위에 포장된 떡들을 모두 뚫어보며 조몰락거렸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한두 번의 귀여운 실수를 넘어 여러 번 반복되었고, 거의 집착적인 행위로 발전했다.

이전 04화 어머니는 담배꽁초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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