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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10. 2024

어린이집 최고의 문제아.

6화 뉴턴의 제3법칙을 깨부수는(?) 아이.


여느 아이들같이 귀엽고 사소한 말썽으로 보내는 줄 알았던 나날 속에, 여타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 유치원 문 앞에서 발을 구르고 울며,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아침뿐만 아니라 그 모든 시간에 교사들을 곤욕스럽게 했다. 나는 한순간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다. 모두가 앉아서 집중하는 시간에는 혼자 바빴고, 모두 아울러 활동하는 시간에는 고즈넉이 혼자 앉아 있었다. 누군가 소통을 시도하며 다가올 때면 아무것도 듣거나 말하지 않았다. 오직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만 일방적으로 다가가곤 했다.


예를 들면, 교사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고 있을 때, 내가 궁금한 게 생긴 모양이다.

『선생님 이건 뭐예요?』

『그건 태극기예요. 가서 친구들이랑 앉아 있어.』

『태극기가 뭐예요?』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예요』

『국기가 뭐예요?』

『국기는 나라를 나타내는 그림이야.』

『왜 나타내요?』

『알아보기 편하게 그림으로 그려 놓는 거야.』

『왜요?』

『그냥 어른들끼리 그렇게 정했어. 자리에 가서 앉아.』

『왜 그렇게 정했어요?』

『아휴 진짜, 선생님 이것 좀 하고 갈게. 가서 앉아 있어.』

『태극기는 왜 이름이 태극기예요?』

『그냥 그렇게 정해졌어.』

『그냥 왜요?』

『너도 이름이 있잖아.』

『이름이 왜 있어야 해요?』

『……』

『태극기는 왜 태극기로 정했어요?』

『너는 몰라도 돼! 그냥 어른들끼리 그렇게 정한 거야!』

『왜요? 왜 어른들끼리 그렇게 정했어요?』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한 거라니까?』

『누구요? 어떤 어른이요?』

『몰라! 가서 앉아!』

『왜 몰라요?』

『가서 앉아!』

『왜 앉아요?』

『너도 다른 애들처럼 앉아서 비디오를 봐야 해!』

『왜 비디오를 봐야 해요?』

『비디오를 볼 시간이니까…』

『왜 비디오를 볼 시간이에요?』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왜 그렇게 정했어요?』

『……….』

『선생님!』

『…….』

『선생님 그런데 이건 뭐예요?』

『……. 하… 씨…….』


교사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애써 나를 도외시했다. 잠시 뒤, 그녀는 내가 떠났기를 바라며 눈만 살짝 홉떠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경직된 표정으로 눈동자를 뒤집어 굴리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 사실 어릴 적, 나의 대화나 소통이 거의 이런 식이였다. 이런 걸 소통이라고 볼 수도 없겠지만.


평화로운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어깨를 톡톡 치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무엇이 그의 관심을 끌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다지 상냥하지 않았다. 그의 턱을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포크로 찍었다. 그는 날카로운 통증과 공포에 질려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수저를 들었다. 어떠한 문제점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가 얼굴을 디밀며 성가시게 구는 바람에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방해받았기에, 응징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아이들이 몰려와 다친 아이를 걱정하고, 교사도 속히 다가와 상황을 살폈다. 아이들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잘못을 일렀다. 나는 잔잔하게 흐르는 물을 바라보듯,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느 날은, 내가 흡사 고생해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맹수처럼, 한 아이의 어깨를 꽉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에 침해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결정된 행동이 아니라, 순전히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교사가 달려와 나를 제지하고, 물린 아이의 옷을 벗겨 상처를 확인했다. 나중에 집에서 부모님이 하는 대화를 통해, 그 아이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좀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자유로운 놀이시간이었다. 나는 한 아이가 부는 나팔 장난감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 순간 나는 잘못 발사된 물로켓처럼 그 아이에게 돌진했다. 그의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마구 할퀴었다. 뉴턴의 제3법칙 ‘모든 작용에는 그와 동등한 반작용이 있다’의 잘못된 예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그의 얼굴에 수없이 많은 상처를 내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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