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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안그레이 May 03. 2024

흉기를 휘두르던 나의 아버지

2화 그리고 그 아래, 나.


조금 더 뒤로 돌려서 어느 날, 나는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다리를 휘적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술에 절어 비틀대며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고성방가 하며 주변 모든 것을 박살 내려는 듯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경찰이 들이닥쳐 제지했지만, 그는 몸부림치면서 자기 허리춤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윽고 벨트를 풀더니, 바지를 내리고 더 벋장댔다. 어머니는 그가 수갑을 차고 끌려나갈 때까지 목이 쉬도록 욕설을 퍼부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다리만 휘젓고 있었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깊은 밤, 나는 다시 마루에 걸터앉아 양다리를 교차로 뻗어 차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흔들리는 다리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그것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욕설을 내뱉었다.


『나가 이 새끼야! 술 처먹고 와서 또 지랄이야! 대가리 깨져 뒤져버려라!!!』 어머니는 혐오와 분노를 쏟아부었다. 그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대각으로 마주 서서 치열하게 다투었다. 『씨 박할 년 아!!!』 갈라지는 아버지 목소리에 폭풍전야의 조짐이 담겨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공업용 커터 칼을 꺼내어 휘두르며 주변을 위협했다. 나와 아버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그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허공을 향한 칼 무의 주인공이 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충돌에 대해 무감각했다. 다시 고개를 숙여 다리의 움직임을 즐겼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버지는 첫딸인 나를 극진히 아껴 생각했기에, 절대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썅놈아! 뒈질 거면 너 혼자 뒈져!!!』 어머니도 보통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분노의 화살촉을 비처럼 날렸다.

『이런 씨 박할 년이 배때기를 확 젖혀버릴라!』 아버지는 더욱더 거세게 칼을 휘둘렀다. 칼춤을 추듯 혹은 쥐불놀이처럼 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자기 팔이 회전하는 힘을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면서 점점 내게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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