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무 감각 없이 솟구치는 피를 바라만 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모든 동작과 숨소리마저 멈추고 칼날을 바라보았다. 치열하게 싸우던 부모님 사이로 갑자기 찾아온 정요와 동시에 내 허벅지의 살점이 벌어졌다. 난 역겹게 벌어진 피부 사이로 천천히 헤엄쳐 오르는 피를 바라만 보았다. 피가 솟구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세면대 밖으로 넘치는 수돗물처럼 콸콸 흘렀다. 인간의 몸에 그렇게 많은 피가 존재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따듯한 감촉이 종아리까지 흥건히 적셨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야!!! 개새끼야!!!』 어머니는 급히 아버지를 밀치고 다가와 내 허벅지와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씨발놈아! 이젠 니 애새끼한테도 칼질이야! 나가 죽어!!』 어머니의 표정은 부아로 일그러졌으나, 그 눈빛에는 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위험을 모면했다는 환희와 안념이 가득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고대하는 사람처럼,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기회에 아버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싶어 했다. 고통과 두려움에 혼절한 나의 통곡을 기대했던 것이다. 난 그 눈빛을 재빨리 읽었다. 억지로 서러운 눈물을 짜냈다. 아버지는 당황하며 뒤로 주춤했다. 그때야 어머니는 나를 들춰 업고 나가, 숨 가쁘게 달려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도 택시 기사는 아이의 피로 좌석이 얼룩질지 하는 걱정이나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차를 몰았다.
J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를 다루듯 긴박했지만, 의료진은 별일 아니란 듯 차분히 내 인적 사항을 받아 적었다. 기사가 떠난 후,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곧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침상 옆에 서서 바늘을 꺼냈다. 칼날이 허벅지를 한 뼘이나 가를 때도 아프지 않았지만, 그 작은 바늘은 왜인지 바라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온몸을 비틀며 치료를 거부했다. 『네가 그렇게 움직이면 꿰맬 수가 없잖아. 계속 피나고 싶어? 더 아파질 텐데?』 의사의 일리 있는 협박에 이를 악물었다. 그가 쥔 바늘이 예리하게 피부를 가로질렀다. 아프지는 않았다. 봉합이 마무리되고, 의료진이 퇴원 지시를 내렸다.
『성희는 입원해야 해요! 이 상태로 어떻게 집에 가라는 거예요!』 어머니는 격양된 상태로, 팔짝 뛰며 거부했다. 의사는 입원 치료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며, 여러 번 어기차게 귀가를 권유했다. 『이대로 돌아갔다 잘못되면 책임지실래요?! 하루라도 입원시켜 주세요!』 어머니는 계속해서 억지 부리며 언쟁을 자아냈다. 정말 나를 걱정한 걸까, 단지 괴물에게 돌아가기 싫었을까? 아니면, 그의 가슴에 죄책감을 단단히 못 박으려 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분명히 서둘러 돌아가고는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퇴원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로 인계할 수밖에 없어요.』 의사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는 결단이 묻어났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