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를 떠나 하와이에서 찾은 노년의 보석
한국에서 살아가며,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도 나에게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해준 책이 있다.
바로 『The Good Life: Helen and Scott Nearing’s Sixty Years of Self-Sufficient Living』(1990)이다.
이 책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스스로 자립하며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에 대해 말해준다.
대지와 자연이 주는 기쁨,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원칙과 실천으로 결실을 맺는 만족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는 그들의 삶을 통해 배웠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가슴 깊이 새긴 말이 있다.
“Plain Living, High Thinking” ― 소박한 생활, 고상한 생각.
이 말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이자, 나의 삶의 방향성을 이끌어준 가치였다.
특히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는 나에게 깊은 감사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서의 바쁜 일상, 메마른 LA의 도시 생활, 그리고 어바인으로의 이주. 그 모든 경험을 거쳐 우리는 하와이 이주를 준비하며, 비록 완전한 공동체는 아닐지라도 헬렌과 스콧 니어링처럼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박한 삶’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아직 인생의 절반쯤에 와 있는 과정일 뿐이고, 이 선택은 어디까지나 ‘중간평가’의 시점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하와이로의 이주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 것부터 해운, 자동차 운송, 유틸리티 해지와 변경 등 해야 할 일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2022년, 하와이 호놀룰루의 워드 지역에 새로 분양하는 콘도를 계약했다. 계약 후 총 세 차례에 걸쳐 계약금을 납부했다. 그리고 2023년, 내 생일에 맞춰 와이키키에 작은 콘도를 한 채 더 구입했다.
이 와이키키 콘도는 우리 부부가 분기마다 하와이에 머물며 1~2개월 정도 체류할 공간으로 마련했다.
캘리포니아 집을 매각한 이후에는 이 콘도에서 약 1년간 지내며, 그 후 렌트로 돌리고 새 콘도로 이사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하와이에서의 시간에 정이 들자, 캘리포니아의 집이 점점 ‘남의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밤중,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며 바라본 높고 멋진 천장은 예전에는 갤러리처럼 느껴졌지만, 이젠 낯설기만 했다.
그 집은 내가 좋아하는 미술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층고 높은 구조와 조명은 조형미술 느낌이 나도록 하나하나 고르고 꾸민 공간이었다.
싼타페 앨버커키에서 공수해 온 그림들, 예술가 마을에서 골라 담아 온 세심한 정성. 분명 한때는 우리가 ‘평생 살 생각’으로 선택했던 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어바인 집을 구입할 당시, ‘평생 살 집’이라는 마음으로 구조와 위치, 보안 등 다양한 요소를 심사숙고해 결정했었다. 그 집은 게이티드 커뮤니티 내에 위치해 백여 가구가 마을처럼 구성되어 있었고, 보안직원이 상주하는 정문을 통과해야만 출입이 가능한 구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 주변의 환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학군이 좋다는 이유로 중국계 주민들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산책 중에도 중국어로 인사받는 일이 잦아졌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어느 날은, 집 앞 정원을 확인하던 중, CCTV에서 중국계 할머니가 우리 동백나무의 새순을 꺾어 옷에 숨겨 나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2주 동안 매일 아침 정원 앞을 지키며 도둑을 경계했다.
물리적인 문제라기보다, 심리적인 피로감이 서서히 쌓여갔다.
그럴수록 하와이는 점점 더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3개월마다 호놀룰루에 체류하면서, 작은 콘도에서 바라보는 와이키키 바다 뷰와 야경은 날이 갈수록 더 아름다워 보였다.
어바인 집에 머무르다가도,
“빨리 하와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와이의 대부분 콘도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들이고, 50년 이상 된 건물도 적지 않다. 다행히 지난 10년간, 알라모아나와 워드 지역에 새로운 고층 콘도들이 속속 들어서며 도시의 얼굴도 바뀌었다.
특히 알라모아나 쇼핑센터 인근은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고급 콘도와 상업시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23년에 우리가 구매한 와이키키 콘도는 섬 크기 자체가 제주도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대규모 재건축보다는 기존 건물 유지·관리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해당 콘도의 HOA(공동관리비)는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건물 보안과 층간소음, 시설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콘도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곳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건물을 관리하는 직원은 총 35명. 백인, 폴리네이시안(하와이 원주민), 필리핀계 하와이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친절하고 세심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우리 부부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원들에게 작은 선물과 도네이션을 전했다.
그런 나눔 이후, 그들의 미소는 더 다정했고, 인사도 한층 살가워졌다. 작지만 따뜻한 공동체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바인 집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삿짐은 LA 롱비치 항에서 해운을 통해 하와이로 보내기로 했지만, 도착한 물건들을 1년 이상 퍼블릭 창고에 보관해야 했기에 짐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창고 한 칸을 한 달 동안 사용하는 데 824달러(약 100만 원)가 들기에 물리적·경제적 공간을 모두 고려해 짐을 정리해야만 했다.
가장 큰 정리 대상은, 신발이었다.
나는 원래 구두를 무척 좋아했다.
같은 디자인의 신발을 여러 색상으로 갖고 있을 정도였다.
정리를 시작하면서, 무려 수백 켤레의 구두 중에서 최종적으로 약 100켤레만 남기기로 결정했다. 좋아하던 것들과 작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전제품과 가구도 대부분 처분 대상이었다.
1층과 2층에 있던 가구, TV, 그리고 차고에 있던 2대의 냉장·냉동고까지 모두 이사 들어오는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
특히, 하와이로 가져갈 수 없는 대형 그림들은 별도의 계약서 양식을 만들어 새 입주자에게 함께 양도하기로 했다.
부동산업자(리얼터)는 신중하게 선택했다.
우리 동네에서 판매 성과가 가장 좋은 리얼터들을 조사했고, 결국 한국인보다는 중국계 리얼터를 선택했다. 그는 미국에 온 지 약 10년이 되었지만, 영어가 거의 되지 않는, 다소 독특한 인물이었다.
“당당당~” 하는 말투로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구사했지만, 놀랍게도 매주 한 건씩 집을 판매하는 진짜 실력자였다.
우리가 그에게 집을 맡긴 당일 오후, 그는 곧바로 중국인 구매 희망자를 데리고 왔다. 그 여성도 영어는 전혀 하지 못했지만, 며칠 후 번역기를 들고 다시 방문해 계약 절차를 밟았다.
그녀는 중국 산둥성 출신의 싱글맘이었고, 보디가드를 대동해 다닐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 놀랍게도 우리 동네 집을 한 달 사이에 5채나 구매한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결국, 하루 만에 우리 어바인 집은 계약 성사되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가격에 판매가 이뤄졌고, 한 달 뒤 클로징 날짜에 맞춰 어바인을 편안하게 떠날 수 있었다.
(※ 미국의 주택 판매는 MLS에 등록하고, 바이어의 오퍼를 받아 통상 2주~1개월 이내에 계약이 이뤄지는 구조다.)
우리는 하와이에 단순히 ‘여행자’로 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주민’이 되기로 결심했기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면허증 교체였다.
DMV(Driver Licensing Center)에 가서 캘리포니아 면허증을 하와이 면허증으로 교체 신청을 했다. 일주일 후, 우리는 곰돌이 그림 대신 무지개가 그려진 면허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나는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블루쉴드 PPO를 사용했지만, 하와이에서는 HMSA PPO로 변경했다.
하와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HMSA가 최고다”는 말이 자주 오갔고, 막상 사용해 보니 그 말에 100% 공감하게 되었다. 혜택, 편리함, 접근성 —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식료품은 워드 지역 홀푸드(Whole Foods)를 자주 이용했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 할인 덕분에 꽤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했고, 한인마트인 팔라마(Palama)와 H Mart는 한국 식재료와 양념을 사기에 딱 좋았다.
일본 음식을 자주 해 먹는 내게는 알라모아나 쇼핑센터 내 Nijiya 마켓도 매우 유용했다. 걸어서 15분, 차로는 5-10분 거리. 필요한 모든 것이 30분 이내에 해결되는 구조. 이곳 생활이 점점 ‘맞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하와이는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나요?”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가가 비싼 곳은 관광객을 위한 구역이고, 우리가 로컬로 적응하고 합리적인 소비만 한다면 오히려 캘리포니아보다 지출이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1.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한국이나 캘리포니아 한인 커뮤니티에서처럼 품위유지비나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순두부를 먹으러 가면서 에르메스백을 드는 문화도 없다. 우리는 폴로 티셔츠, 반바지, 라탄백이면 충분하다.)
2. 재산세가 낮다.
(어바인 집에서 내던 재산세의 1/3 수준으로 줄었다.)
3. 병원과 인프라가 가까이 있다.
(퀸즈 병원 Queen’s Hospital까지 자동차로 15분이면 도착 가능하다. 거대한 LA 교통체증은 이곳에 없다.)
4. 도시락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일본계 문화 영향으로 벤토(bento)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도시락 한 끼가 가능하다)
5. 상대적으로 안전하다.(하와이는 군사 기지가 주둔하고 있는 섬이며, 홈리스가 관광객에게 해를 끼칠 경우 섬에서 추방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는 관광 중심 도시로서의 치안과 질서 유지의 일환이다.)
이곳은 그저 ‘휴양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장소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골프를 치지 않기로 하자.”
20년 넘게 윌셔 컨트리클럽의 회원이었지만, 우리는 과감히 회원권을 취소했다.
골프를 치는 시간 대신, 사회 환경과 공익을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고, 사회활동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하와이에서 실천하고자 한 방향이었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가치관이 같았다. 남편이 소유하고 있던 파운데이션을 내가 관리하게 되면서,
이제는 공동 명의로 대학, 복지기관, 한국의 노인종합복지관 등을 함께 지원하고 있다.
사교 행사보다, 나눔.
자기 과시보다, 함께하는 존엄.
우리는 지금 가진 것에서 더 욕심내지 않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는 작은 실천이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그 바람이 파도가 되어 너울지기를,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남편은 지금도 10년 전, 내가 생일 선물로 준 지갑을 들고 다닌다. 귀퉁이가 닳고 모양은 흐물흐물해졌지만, 그 지갑 하나에 담긴 그의 습관은 변함없다.
절제되고 실용적인 삶,
합리적인 선택,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랑.
하와이에 오고 나서, 나는 그 모든 것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와이에 오길 참 잘했다.”
남편은 매일처럼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이 순간,
이 섬에서 시작된 우리의 삶은
점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고 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방향으로,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법.
우리는 지금도
하루하루 그것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