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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Dec 13. 2022

말할 수 없는 비밀- 새엄마에게

애잔한 눈빛은 필수, 슬픈 표정은 옵션

말할 수 없는 비밀새엄마에게 

         

엄마! 내가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한 달 하고 반이 지났네요. 처음 이 집에 온 날,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우리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었죠.

      

새엄마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유리 상자가 제집인 줄 알았어요. 친엄마와는 어떻게 이별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못 보던 친구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유리로 된 집은 기저귀 한 장, 밥그릇 하나 놓으면 끝. 좁디좁은 집에서 뛰어노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밥 먹고 나면 또 누군가가 와서 문을 열어요. 바깥세상을 맛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매일 아침 빗으로 눈곱을 뗄 때마다 눈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 살점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엄마처럼 안구 세정제로 불려서 하면 덜 아픈데 거기는 워낙 친구들이 많아서 그럴 여유가 없었나 봐요.

      

밤이 되면 낑낑거리는 친구들 때문에 저도 눈 붙이기 쉽지 않았어요. 해가 떠오르면 배고프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고 누군가가 물에 불린 사료를 한 움큼씩 주더군요. 그분이 우리에게는 귀인이었어요. 그런데 거기는 하루 두 끼만 주더라고요. 다들 나처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인데... 엄마도 한 번 생각해봐요. 형아들이 아기였을 때 수시로 맘마 달라고 울지 않던가요? 얼마나 배 고픈지 아느냐고요. 엄마가 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저는 매일 밥 좀 더 달라고 소리 지르다가 아마 허스키 보이스 쭈니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저는 유리 집에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곳은 참 이상해요. 아침에 분명 내 옆에 있던 친구였는데 낮잠 자고 나면 어디론가 가버리더라고요. 그럼 또 새로운 친구가 오고 유리 벽 너머로 인사하고 나면 또 어느새 사라지고... 인간 세상도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던데 그래요?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형아들이랑 엄마 아빠가 유리 집 건물로 들어오더라고요. 저는 그때 얼마나 작은 형을 뚫어지게 쳐다봤는지 몰라요. 형아의 눈빛이 동생을 간절히 찾는 것 같았거든요. 제가 꼭 형아 동생이 되고 싶었어요. 맨 처음 저를 안던 형아의 떨리는 손길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얼마나 조심스럽게 저를 안아 주던지 …. 형아는 엄마 뱃속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과 처음 마주한 아기를 안아 주는 아빠의 따스한 손길 같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형이 저를 내려놓더니 내 옆 친구를 안아 주는 거 아니겠어요? 헐... 뭐야 이 형. 순간 화가 나더라고요. 마치 제가 동생인 것처럼 아이고 예쁘다 하며 쓰다듬고 이뻐할 때는 언제고.

      

역시 인간들은 변덕이 죽 끓듯이 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봐요.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저를 안아 주더라고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엄마에게 세상 슬픈 표정을 선사했어요. 엄마의 막내아들이 되고 싶다며 제발 제 마음 좀 알아달라고 애원했죠. 제 전략이 통했어요. 엄마는 형아를 부르더니 저를 다시 안아보라고 하더군요. 형아는 이번에도 덜덜 떨면서 형아의 온기를 나눠주었어요. 그리고 저를 막냇동생으로 택하니 이제 데리고 가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우리 집 막내 쭈니가 되었답니다. 

    

 첫날에는 여기가 어디인지, 당신들이 누구인지 몰라 여기저기다 실수를 했어요. 인간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네 명이 다 저를 둘러싸고 앉아서 계속 “쭈니야.”를 외치니 귀가 멍해지더라고요. 제 이름이 ‘쭈니’인 것을 일주일이 지난 뒤에나 알았답니다. 제가 속도가 좀 늦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저는 아직도 적응 중이랍니다. 엄마, 그래도 첫날부터 나에게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다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 앞으로 잘 지내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궁금하다고요? 그건 다음에 알려줄게요. 새엄마 아니 이제 엄마!!

엄마가 제 엄마라서 행복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입양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유기견 입양도 고려하고 있었고, 가정 입양도 알아보던 차에 우연히 들렀던 동물병원이었습니다. 1층에 쇼윈도 마냥 전시되어있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애잔하면서도 예뻤습니다. 그저 한번 가서 우리가 진짜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보자며 들렀던 길이었습니다. 


 그날 아이는 쭈니가 자기 동생이라며 꼭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법 분양이 아니라 공식적인 곳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건강한 쭈니라고 믿으며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쭈니는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아야 하는 아이였어요. 그렇게 우리 막둥이가 되어 2022년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쭈니 이야기 많이 들려드리겠습니다.



https://brunch.co.kr/@viviland/25


https://brunch.co.kr/@viviland/23


https://brunch.co.kr/@viviland/8


#반려견#애완견#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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