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ar de Uyuni, Bolivia
달을 삼킨 밤. 칠흑 같은 황야의 한가운데 유일하게 빛을 가득 머금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빼곡히 쌓인 별들이 오늘의 등대가 되어 깊은 밤 내내 외롭지 않게 나를 이끈다.
새벽 2시 감성은 중학생 2학년도 못 이긴다던데.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할 도리가 없으니, 저 별빛에 홀려 써 내려가는 이야기라고 하자. 별건 없다. 그저 고리타분하고 그렇고 그런 얘기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좁은 골목길. 높은 아파트 사이로 겨우 비치는 하늘을 비집고 보는 저녁 시간이 좋았다. 또 어떤 날은 아주 늦은 시간에야 해야 할 일을 겨우 마칠 수 있었으니, 대체로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은 짙은 저녁에서 가물가물한 밤하늘뿐이었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가 흘렀을 뿐인데 유독 힘든 날이 있었다. 스스로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이 가라앉는 그런 날이. 집에 다다르기 직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올려다 본 밤하늘에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그곳엔 평소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그마한 별들이 총총 떠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별들이 오늘에서야 선명히 보였다는 게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반짝하며 빛나는 것이 힘내라며 도닥여주는 무언의 신호 같아서. 유독 더 반짝여 보이는 건 나의 기분 탓일지는 몰라도, 지친 내 마음속으로 별 하나가 날아들어와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날의 밤하늘을 오래 간직하려고 내가 아는 동네의 골목길 사이사이를 몇 번이고 빙빙 돌았는지. 발걸음이 다시 집으로 향할 무렵의 나는 조금 후련한 듯 웃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부터 별을 찾는 일이 잦았다. 도무지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들을 별빛 삼아 내려다 본 날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날에는 이유 모를 답답함으로부터 도망치듯 기차표를 끊고 두 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강원도의 한 산속에서 별을 쫓아 위로받기도 했다. 무언가 빌고 싶어질 때엔 아무 별이나 붙잡고 내 소원 좀 들어달라며 떼를 쓰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케케묵은 이야기들은 별과 나만이 아는 비밀로 몰래 쌓여만 갔다.
당장에는 가슴을 콱 막히게 하는 걱정도, 깊은 곳에서부터 내뱉고 싶은 한숨도 없다. 침대 머리맡 위로 어지러이 떠도는 잡생각 하나 없이 잠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가게 되면, 잠시 멈춰둔 일상의 시계가 다시금 흐르게 되면 지금처럼 말간 마음으로 별을 올려다보는 일이 까마득해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기다려주는 일 없이 나를 관통하여 지나갈 것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지나 초연한 마음으로 별을 마주한 것처럼, 또 다른 힘든 일들에 복잡한 마음으로 별을 찾는 날이 오겠지.
이런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지지만 만약 그런 순간에 부딪힌다면 내가 떠나온 여행을 기억하자. 내 두 발로 열심히 걸어내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기쁨을.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올려다 본 밤하늘의 은하수를.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모든 여정을.
그래서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지난 후에야 후회하는 일은 없도록, 아쉬울 시간에 더 깊이 사랑해 보기로 한다.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