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영과 첫사랑의 상관관계

엄마는 모르는 이야기

by 서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년이 올라갈수록 강낭콩처럼 쑥쑥 크는 동급생들과는 달리, 나는 여전히 작고 마른 채였다. 그 당시 키순서로 자리배정을 하거나 줄을 세우는 키번호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급 친구끼리 운동장으로 모여 서로 등을 맞대고 키를 재는 풍경은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이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어중간한 키의 아이들보다 누가 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작은지 가리는 순간이었다. 방학 동안 키가 부쩍 자란 친구들은 걸어 나오는 폼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큰 쪽을 겨룰 때는 '우와~ 쟤 진짜 커!'라며 감탄이 쏟아졌지만, 작은 쪽을 겨룰 때는 '풉. 내 동생보다 작은 거 아니야?'같은 비웃음 섞인 놀림이 대부분이었다. 34명의 아이들 중 독보적인 난쟁이 똥자루였던 나는, 후자의 놀림을 받는 쪽에 가까웠다. 이번 학년에도 결국 또 1번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 1번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앉기 싫은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고, 각 과목의 선생님들이 발표를 시킬 때면 으레 1번부터 떠올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 학기만 시작되면 묘하게 기가 죽어 돌아오는 나를 볼 때마다, 엄마는 내 손발을 보며 말했다.

'이상하다. 네가 손발이 커서 키가 자라긴 할텐데....'

엄마는 위로인지 바램인지 모를 그 말을 계속해서 나에게 주입시켰다. 예를 테면 한 치수 큰 옷을 사주며 금방 딱 맞을 거니까 괜찮아!라고 하거나, 한 치수 큰 신발을 맞출 때도 내년 되면 이것도 작을 거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런 엄마의 기대를 배신하기라도 하듯 나는 중학생 3학년이 될 때까지 성장이 무척 더뎠다.)


어느날은 담임과의 학부모 상담에서 혹여 자녀가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그날 밤 잠을 설칠 만큼 심란했다며 훗날의 나에게 고백했다. 깊은 밤 내내 골똘히 고민하던 엄마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내 딸을 이대로 두어선 안된다고. 당장 뭐라도 해야한다고! 그렇게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동네 수련관의 수영 강습에 등록하고 마는데....

수영을 한번도 배워보지 않은 나는 자연스레 초급반으로 배정되었다. 제일 먼저 음-파- 소리를 내며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시작으로,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 것이 강습의 전부였다. 어린아이의 작은 체구로 25m를 가려면 물장구를 정말 많이 쳐야했다. 강사님은 몸을 뒤뚱거리지 말고 딱 고정시키라며 혼내셨지만, 나는 온 몸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엉덩이를 씰룩쌜룩 움직이며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월초가 되면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왔다. 멤버가 쉽게 바뀌지 않는 상급반과는 달리, 초중급반의 신규 회원은 늘 있는 편이었다. 처음 만난 것도 어색한데 수영복을 입은 채 마주친 또래들은 서로 인사조차 나누기 부끄러워했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쾌활한 두 명의 아이가 눈에 띄었는데, 야 야, 누나 누나 하며 허물없이 장난치며 투닥거리는 걸 보니 영락없는 남매의 모습이었다. 특히 남자애 쪽은 한번 웃으면 수영장 전체가 울릴 만큼 시끄러웠다. 그 남자애가 자신의 누나 말고도 앞뒤에 선 애들한테 한두 번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용하던 우리 반이 조금씩 시끌벅적해졌다.


어느날에는 걔가 내 바로 뒤에 섰다. 혹시 나에게도 장난을 걸까봐 괜히 긴장이 되었다. 나는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킥판 없이는 서있을 수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본 걔가 내 약점인 키를 가지고 놀리기 시작했다. 걔는 딱 봐도 나보다 동생 같아 보였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참고 넘어가 주었으나, 다음 날에도 나를 보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땅꼬마래요~ 땅꼬마래요~' 하고 노래까지 부르며 놀려댔다. 매번 한두번씩 말리던 걔의 누나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럴때마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창피해졌다.


그러다 걔가 유난히 짓궂게 굴던 날이 있었다.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나에게 어지간히 심통이 났는지, 내가 잡고 있던 킥판을 홱! 하고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몸이 순식간에 물속으로 가라앉는 바람에 팔다리를 허둥지둥 움직였다. 물안경도 안 쓰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걔도 이럴 줄은 몰랐는지 황급히 내 팔뚝을 잡아 끌어 올려줬는데, 물 밖으로 겨우 나온 나는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다. 괜찮냐고 묻는 걔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걔 코를 주먹으로 가격하고 말았다. 윽! 소리를 내며 코를 부여잡은 모습을 봐도 분이 안 풀렸다. 그러다 강사님이 저 끝에서부터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우리 둘에게 버럭 외쳤다. 너네 당장 수영장 밖으로 나와!

걔랑 나는 남은 강습 시간 내내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해야만 했다. 먼저 장난을 친 건 걔인데 나까지 벌을 받아야해서 억울했다. 걔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으나 단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날부로 걔는 다른 애들이랑 한참을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입을 다물었다. 내 뒤에 서는 날에도 일절 장난을 거는 일이 없었다. 내가 킥판 없이도 물에 뜰 수 있게 되어 중급반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도 계속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나는 그럴때마다 걔한테 서운한 마음이 쌓여만 갔다. 혹시 널 좋아해서 장난치는거 아니냐며 한편의 로맨스를 기대하던 친구들은 이 얘기를 듣고 '헐. 완전 개애바'라며 오히려 걔를 불쌍해했다.


그러다 아직 초급반에 남아있는 걔네 레인을 훔쳐보다가, 다른 여자애들한테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일부러 물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올 때마다 내 마음도 끓어올랐다. 반이 바뀌고 난 뒤에도 한동안은 걔가 인사를 건넸으나, 나는 괜히 차갑게 굴며 모른 척했다. 속마음은 이게 아닌데 괜히 미운 행동으로 걔한테 상처 주는 것같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더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이제는 걔가 인사조차 건네지 않게 되었을 무렵, 어느 날 초급반 레인을 보니 걔와 걔네 누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내내 궁금한 마음을 참다가, 아직 초급반을 벗어나지 못한 친구에게 슬쩍 물었지만 왜 안 나오는지 아는 애는 아무도 없었다. 걔가 있을 땐 시끌벅적했던 초급반도 다시 예전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걔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으나, 내가 수영을 그만두기 전까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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