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 대체 뭐길래
급한 마음을 다스리려면 다도를 배우라는 말이 있다. 물을 끓이고, 찻잎이 우러나길 기다렸다가, 온기가 알맞게 식으면 비로소 한 모금 머금는 일. 잔잔한 물이 흐르듯 천천히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은 '기다림'과 '알맞은 때'를 배우는 일일 테다.
얼마 전, 길을 걷다 만난 멋스러운 한옥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누군가의 개인 저택일까? 괜히 서성거려본 그곳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고서야 다름 아닌 카페임을 알았다. 요즘 카페들은 참 멋진 곳이 많네! 속으로 감탄하며, 나는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춰서서 고민에 빠졌다. 시간은 오후 2시. 커피 한 잔이 절실한 타이밍이었다. 딱히 약속이 있다거나 목적지가 있던 산책이 아니었으므로,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카페 안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겉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멋스러웠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나무와 풀로 가득해서, 눈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사람들의 테이블 위에는 커피 대신 온갖 다도 기구가 펼쳐져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곳의 이름을 확인해 보니 '00 티클럽'이라는 이름을 가진 찻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원래의 목적은 커피였으나, 나는 공간의 분위기에 녹아드는 쪽을 택하며 자연스레 차를 주문했다. 사무실에서 티백을 대충 우려먹는 일 외에 제대로 차를 마셔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단정한 걸음의 직원이 내 앞에 내려놓은 예쁜 찻잔과 찻주전자를 보니 한껏 고상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퍽 난감해졌다. 앞에 놓인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치 소꿉놀이를 시작한 아이처럼 찻잎을 찻잔에 조심스레 옮겨 담고, 그 위로 뜨거운 물을 들이부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거창한 과정이 없어, 이게 맞나? 긴가민가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물은 여전히 투명했다. 금세 답답해진 나는 티스푼으로 찻잎을 꾹꾹 누르고 있자, 유유히 떠났던 그 직원이 허겁지겁 다가와 말했다.
"티클럽을 처음 이용해 보시는 군요!"
다급함이 느껴지는 그녀는 미처 놓쳤던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찻잎을 그렇게 누르시면 쓴맛이 같이 우러나거든요.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면 금빛을 띠면서 자연스레 우려질 거예요. 적당히 식었을 때 맛 보시면 된답니다."
추상적인 설명을 듣고 나니 나는 더 알쏭달쏭해졌다. 그 '잠시'와 '적당히'는 언제쯤인 걸까? 직원의 조언대로 찻물이 금빛으로 우러나자마자 마셔보니 어쩐지 밍밍했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식혀 먹자니 이번엔 너무 떫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물을 부을 때쯤, 차의 향과 색이 더는 진해지지 않았다. 잔뜩 나온 물배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와 다도는 친해지기 어렵겠군.
이런 나의 급한 성미는 일상에서도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분명 계란후라이 반숙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들어 올리는 바람에 결국 스크램블을 완성해 버린다든지, 일기를 쓸 때도 머릿속 생각을 서둘러 옮기다 글자를 삐끗하는 식이었다. 수영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영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한 운동이다. 팔을 돌리고 발을 차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물의 흐름을 제대로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물장구를 쳐도 앞으로 슝슝 나아가기는커녕,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제자리에서 맴도는 느낌이랄까.
직장인에게는 황금 같은 주말 오전 9시. 오늘 내가 수영장에 온 이유도 바로 이 '타이밍' 때문이었다. 앞사람과 간격이 벌어지는 것도, 나만 유독 빨리 지치는 것도 모두 팔과 발의 엇박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머리로 공부를 하면 뭐 하나.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평소라면 밀린 잠을 몰아 자느라 한참 늘어지게 자고 있을 시간이었을 텐데, 부지런히 나온 만큼 오늘은 기필코 그 타이밍을 찾아내고 말리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내가 제일 잘 하고 싶은 영법은 멋진 접영도, 우아한 배영도, 여전히 서툰 평영도 아닌, 바로 자유형이다.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자유형은, 단어 그대로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영법이기 때문이다. 한자어로 표기하자면 스스로 자(自), 말미암을 유(由), 모형 형(型)이 합쳐진 '자유형(自由型)'. 형식에 제한이 없음을 뜻하는 이 세 글자의 조합이 나는 썩 마음에 든다.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을 배신이라도 하듯 몸은 내가 원하는 감각으로 따라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면 물속으로 가라앉고, 팔을 무리해서 크게 꺾어 돌리면 어깻죽지가 시큰시큰 아파왔다. 분명 영상 속에서 봤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원인을 알 수 없어 심통이 났다. 답답함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레인 끝에 다슬기처럼 붙어있던 중년의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힘드시죠?"
"네... 좀."
"왜 그런 줄 아세요?"
평소 같았으면 가장 기피하고 싶은 수영장 빌런 1위, 훈계형 빌런인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겠지만 '마스터즈 대회'라는 글자가 새겨진 수모를 쓴 그에게서 왠지 모를 권위가 느껴졌다. 나는 결국 미끼 같은 그의 물음에 걸려들고 말았다.
"왜 그런 건데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 우다다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무 급해요. 물을 밀기도 전에 팔을 당겨서 앞으로 가는 걸 뒤로 당기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자, 보세요."
그는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수면 위로 올라와 이어진 동작은 가볍고 깔끔한, 딱 내가 원하는 모양의 자유형이었다. 그의 조언이 근거 있음을 납득한 순간이었다. 나는 뒤이어 조금 전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기며 헤엄쳤으나, 스스로도 민망할 만큼 손과 발의 움직임이 엇박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오른팔 돌리는 타이밍이랑 호흡이 안 맞아요. 고개 돌리는 속도가 너무 느려요. 다시!"
나는 그 뒤로도 급했다가, 느렸다가. 아주 그냥 번갈아 가면서 엉망진창인 자유형을 했다. 해방감이고 뭐고, 당장 머리도 마음도 아픈 이 상황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괜히 저때문에 수영도 못하시고... 그만 봐주셔도 돼요."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의 운동을 방해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을 담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친자(수영에 미친 자)특유의 멘트를 날리며 가볍게 무시했다.
"아니에요. 어차피 수영은 맨날 하는 건데요, 뭐."
오, 이런. 나는 걸려도 한참 잘못걸렸구나!
느긋하게 한 시간만 채우려던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되어 두 시간을 꽉 채운 것도 모자라, 수영장의 마지막 사람이 빠져나갈 때까지 그와 나의 맹훈련은 계속되었다. 안전요원의 퇴장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릴 때까지도 그는 마지막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밀고 당기기, 그러니까 밀당을 잘하란 말이죠!'
샤워하는 동안에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점심을 먹을 때도 한참 지나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미뤄뒀던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을 텐데. 계획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타이밍이란 타이밍은 전부 엇나가버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