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인 Oct 25. 2023

<한동일의 공부법수업>, 한동일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하루가 되길 바라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함께 일하는 차장님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없다. "너에게 공부는 무슨 의미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기에 처음엔 뭐라 답변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질문에 대해 고민했고 두 번째 물어보셨을 때 "문제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찾는 방법인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렇다. 돌아보면 공부는 미래의 불안감, 주변의 시선 등의 문제들이 나를 괴롭힐 때 내가 싸우는 방식이자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었다. 최근 어떤 문제에 부딪치면서 나는 다시 공부를 찾았다. 과거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이자 최초의 바티칸 동양인 변호사인 한동일 님의 공부법 이야기를 꺼내든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이제는 '공부 방법'이나 '공부 기술'보다는 전략에 해당하는 '목표 설정'이나 '가치 추구'를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한동일_<한동일의 공부법 수업>_p41


 이 책은 사실 공부 기술에 대한 책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는다. 저자가 말하길 전쟁에 비유한다면 전술보다는 전략을 논하는 책이다. 전술은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논하는 것이고 전략은 그것보다는 거시적인 시야에서 전쟁의 목적, 전장 선택, 병력 배치 등을 논하는 것이다. 이 책은 공부의 목적, 학업이라는 행위의 의미와 그것을 할 때의 마음가짐 등을 논한다. 이는 저자가 삶과 공부를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기술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공부한다는 행위 자체는 평생에 걸쳐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를 돌아보면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던 왕들 중 그 어떤 왕도 현재까지 계속 그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땅이 그의 소유였습니까? 지금은 또다른 누군가가 그 땅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은 유한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영원한 삶이 주어진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영원을 살면서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한동일_<한동일의 공부법 수업>_p183


 저자의 첫 장 제목은 '모든 터널에는 끝이 있습니다'이다. 이 장의 내용은 한 제자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지독하게 어둡고 힘든 터널의 끝은 있을까요?" 저자는 힘든 현실을 겪고 있는 그 제자에게 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터널이 하나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험을 하나 잘 치고 나서도 학기를 잘 보내야 하고, 대학을 잘 가고 나서도 취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어떤 성취의 영광이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고 우리는 그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저자는 책 전반에 그런 생각들을 반복해 보여준다. 이런 가치관은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터널을 빠져나가는 데 몰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평생에 걸친 길고 불안한 싸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불확실성은 인간 존재에게 근원적인 조건이니 인정하고 끌어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존재인 나 자신을 믿으며 희미함 속을 더듬더듬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내 몸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힘들고 불안할수록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을 잘 해내기 위한 태도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겸손함,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자신을 믿어주는 태도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매듭을 짓는 근성 등을 이야기한다. 단번에 잘될 리는 없겠지만 어쩌면 평생에 걸쳐 행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선에서 계속 의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이 용기와 울림 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나 혼자만 이런 내적 갈등을 겪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 라틴어 경구, 성경 그리고 키케로나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역사 속 인물 이야기를 인용한다. 그들도 존재의 불안, 부모로부터의 독립, 공부의 어려움 등을 호소했음다는 사실이 외로움과 불안함을 줄여줬다. 이런 것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 존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특히 앞으로 나아가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로 한 사람들이 그렇다. 더불어 그냥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아야겠구나 다짐했더니 내면이 조금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나의 존재를 흔들고 내가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는 기회를 주었다. '우리는 젊어서 지은 죄의 대가를 늙어서 치른다'는 문장을 보고 나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고 '깊이를 만드는 건 나 자신'이라는 말에 내가 너무 안일하고 수동적으로 살아온 건 아닌지를 돌아봤다. 그리고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관계에서의 주체성 그리고 실패에 대한 태도 등 내가 부족했던 것들을 발견하며 고해성사해야만 했다. 하지만 책에서도 말했듯 나의 얼룩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 어제보다는 더 좋은 하루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나은 하루가 되도록 살아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호 간 신뢰로 작동하는 도서관, 의정부미술도서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