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당신보다 더 슬퍼지기 전에 나는 이곳을 벗어나려고 한다.
211. 갑자기 생긴 신호등 앞에서 다들 어쩔 줄을 모르고 몰라서 누군가가 다치기도 했다. 상처 입기도 했다.
212. 고흐가 그린 사람들. 고흐가 그린 사람들은 왜 고흐가 그린 사림들이 되었을까.
213. 나, 널 찾으려고 걸었어. 네가 없다는 걸 알고서도. 상관없었어. 난 너를 찾고 싶었지만, 너만 찾고 싶었던 건 아니었거든. 너에게 속해 있던 나를 찾고 싶었어. 다음. 다음이 있기를 바랐거든. 이 시대에서 다음을 바라는 건 뭘까. 다음이라는 게 있을까. 믿고 싶은데 믿으면 또 사라져 버리는 게 너무 많으니까. 시대를 믿는 거야. 사람을 믿는 거야? 이 말에 대답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14. 그건 알 수 없다고 하면 무책임한 건가. 그래도 그렇게 말해야 넘어갈 수 있는 걸까. 그런가. 다음이 자꾸 만들어지는 게. 네가 말한 다음과 내가 말한 다음을 다를 테니까. 가야 한다고. 나아가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215. 만나니까. 좋다. 너를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흘러갔을 시간이겠지만, 흘러간다고 모두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걸 보고 있는 동안만 시간을 느낄 수 있듯이.
216. 하나로 합쳐질 텐데. 이 길은 왜 이리 막혀서 날 헷갈리게 하는 가. 의심하게 만드는가. 문명이 만든 안개. 장막. 너머는 있으나 없으나 하고 자주 헛수고가 생겨났다. 저수지에서 개가 짖지. 개는 어떻게 짖고, 어떻게 사라졌는가.
217. 코로나 이후는 어떻게 설명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섹스토이. 유튜브. 야구. 태극기 부대. 쓰기의 감각. 정관용. 포스트라는 말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가져온다. 우리는 바뀌는 일과 바뀌지 않는 일을 다뤄야 한다.
218. 당신이 당신보다 더 슬퍼지기 전에 나는 이곳을 벗어나려고 한다. 이 지겨운 곳을 헤쳐나가 보려고.
219. 확정할 수 없는 세계이나 그 무엇보다 들여다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전 지구적으로 변하고 있었으니까. 지나가고 있었으니.
220. 맹신의 무서운 점은 너무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 외에는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221.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을 믿고 또 무엇을 믿지 않을지.
222. 변덕스러운 선의가 할 수 있는 건 또 뭘까. 그게 고정될 수 있나. 많은 이들의 변덕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을 거고.
223. 스트로브잣나무. 스트로가 아닌데 스트로잣나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별 다른 게 없는데도.
224. 건너편 지하철에 탄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직감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걸. 아니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걸.
225. 재채기는 꼭 두 번은 해야 시원하더라고. 어쩌라는 건가. 난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