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던 날
나의 이름은 루시꽝입니다. 이 글은 나의 기록입니다. 내가 죽고 난후 이 글은 인터넷 어딘가에 살아 있겠지요. 아니면 쌓이고 쌓인 수 많은 데이터 밑에 숨어 있거나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내가 지은 이름이 웃기죠?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어요. 루시라는 이름은 인류 선사시대 첫 인간여자 해골에 붙여진 학술 이름이고 꽝은 그녀가 지구에 살았다지만 인류는 그녀가 어떻게 살다갔는지 모르기 때문에 되는대로 꽝이라고 붙였어요. 꽝은 노력의 허사며 행운이 없는 일종의 공망 같은 자리지만 허무적멸의 자리입니다.
꽝이라고 슬퍼해야 할까요?
선악을 넘어선 자리이니 슬퍼할 이유도 없죠.
하지만 지구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꽝은 슬프고 외롭고 그런게 더 많은 거 같아요.
문방구 뽑기에서 꽝 나오면 정말 기분 꽝이죠.
그래서 다시 돈 넣고 도전해서 득템할 때도 있죠.
아니면 그냥 꽝으로 끝을 보든가하죠.
인생이 뭐 그렇죠. 결국 죽으면 도무사. 꽝이죠.
열심히 사주역학 공부를 하다가 공부도 하고 수행기도도 하는 장소를 물색중에 도로변 이층에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우연히 부동산에 들려 주변 건물에 대해 물어보다가 소개 받게 되었는데 처음엔 조금 망설였어요. 싼 가격에 맞게 허름한 느낌이었죠. 하지만 깔끔한 허름이었죠. 낡지만 정돈이 잘된 방이랄까.
이층 계단이 가파르고 철재 손잡이가 이어져 난간도 있어요. 복도가 거실처럼 꾸며졌어요.
건물구조가 살짝 비틀어져 있었는데 정직사각형은 아니였어요. 현재 살고 있는 집도 반듯한 네모가 아닌데 이사하려던 이층방도 그런 모양새라 내 운명이려니 했어요. 항상 골라도 그런 이상하게 다락방 같은 구조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어떤분들은 그런 구조는 안좋다고 하는데 나는 맞는거 같아요. 짐승도 사는 집 구조와 재질이 틀리고 놓이는 바가 다 다른 것처럼 사람이 머무는 집도 각양각색이잖아요.
항상 좋은 자리만 살 수 있는 현실은 아니니까요.
어릴 때부터 초중고를 강원도 도계라는 곳에 살았는데 그곳의 오십천 시냇물 줄기를 따라 절벽같은 개천 옆에 홍합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살았거든요. 한국에서 몇 안되는 풍경이지 않나 싶어요. 개천을 따라 넓고 깊은 계곡같은 곳이 흔하지 않잖아요. 그곳 계곡 높은 곳에 올라가면 거의 산등성 같은데 온통 붉게 굳은 바윗덩어리에요. 그리고 그 붉은 바위산에는 조개같은 것이 박혀 있어요. 아마도 오래 전에 그곳은 바다속이였던 것 같아요.
집에서 3분거리라 책과 칼라박스 소소한 물건들을 돌돌이 장바구니에 실어서 옮겼어요.공부만하고 돈을 안벌어서 돈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죠.
9월초도 더웠는데 땀 빨빨 흘리면서 일개미처럼 왕복하면서 겨우 기본적인 짐을 옮겼어요.
그 장소에서 간판 걸 때까지는 운둔자처럼 공부하고 수행 하려고 해요. 올 겨울은 집에서 통근하듯 지내다가 날 풀리는 내년 봄에는 간판을 걸어야겠죠. 아주 눈에 띌까말까한 작은 간판을 걸고 수행공부처로 자리를 잡을 생각이에요.
알바하면서 생활비 마련하고 그렇게 꾸려가다보면 잘되겠죠. 잘된다는 의미는 간단해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잘되는 거에요.
내 마음에 도심주를 잘 가질수만 있다면 그게 나에겐 최상의 잘되는 것이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스로의 빛을 찾고 그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하는 것이 목표에요.
도심속에 자신만의 공부 수행방이 있으니 참 좋네요.
집에서는 가족들이 있어 소리내어 주문 수행하기도 그렇기 한데 수행처를 만들어 놓으니 찾아온 손님이랑 대화를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어서 좋네요.
태을주 주문 수행은 참 좋은 거 같아요. 밖이 시끄러운데 전혀 수행에 방해를 받지 않아요. 오히려 밖이 시끄러우니 내가 주문을 크게 외워도 부담되지 않아요. 맘껏 우렁차게 할 수 있어요.
태을주 주문 수행은 현대인의 정신을 모우는데는 아주 좋아요. 주문 글자 소리는 오행으로 주로 토기운이 많아서 중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마음과 정신이 안정되고 몸도 건강해지네요.
현재를 공부와 기도 수행을 하지 않고 보냈다면 운의 영향으로 아주 더 힘들 상황인데 좋은쪽으로 운을 바꾸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