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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Oct 05. 2018

산다는 게 이런 걸까

묵은 글 다시 이어쓰기

회사에 입사한지도 한달이 지났다. 2월 말에  입사하여 첫월급을 받았다. 잔업을 빠지지 않아  몸은 피곤하지만 결과물은 달다.

아침 일곱시 십이분이면 어김없이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나간다.


날씨는 많이 풀린거 같다. 아파트 화단에 핀 개나리가 봄임을 증명한다.


나는 이 글을 가을이 되어서야 열어보게 되었다.

사진을 보니 나지막한 개나리군들이 뾰족 노란 입술을 병아리 부리처럼 내놓았다.

이때 나는 어땠지? 기억이 잘 날듯 말듯하다. 2년을 돈 안벌고 역학 공부에만 매달렸었다. 매일 매일 그렇게 시간을 쪼개면서 쉬지 않고 공부를 했던 기억... 매일 똑같은  식탁 자리에 앉아 엉덩이가 발개지도록 손가락이 물러지도록 쓰고 베끼고 암기하고 그렇게 보낸 시간들... 쌓인 것은 반성문 같은 노트들...

그리고 의자의  인조 가죽은 마른 땅처럼 갈라져있다. 다른 의자는 무사한데, 내가 앉은 의자만 유독 까이고 갈라져있다. 삭았다. 인간의 질긴 엉덩이...

 그런데 우습게도 난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귀로 도대체 뭘 들은 것이고 눈으로 뭘 익혔는가.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소멸되어졌는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초등학교 교과서처럼

뭘 배웠는지...

뭘 익혔는지... 제대로 한 건 맞는 건지...

지금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한 재생 반복을 하고 있다.

나이 탓인가. 나의 좀쓴 머리에 대해 좀비뇌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공부는 아직까지 좋다. 좋아서 미칠 지경인데 그래서 마음에서 여지껏 안놓고 시시때때로 나머지 시간을 공부로 올인한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더욱 더욱 ...

정상은 아닌 행동같다고 스스로 생각해보는데 그래도 좋아서 공부하는 거라 그런지 지치지 않는다.


그냥 공부하는 게 마냥 행복하고 좋다. 공부할 때만은 아무 잡념이 안생긴다. 외로움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데 그냥 뭘 외우느라 정신이 팔려서 어느새 한 고개를 넘는 그런 사람같다.


이제 모든 게 내 공부가 된다. 모른다는 게 좋다.

모르니까 끊임없이 깨달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이 자체가 좋다.

연구할 게 있는 게 좋다. 궁리하는 게 좋다.

이 자연을 알아가는게 좋다. 이 자연이 나의 연인이 된 느낌마저 든다.

때로 무서운 면도 보지만 그래도 좋다. 알아간다는 기쁨이 무서움보다 더 앞서 있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났고 푹 쉬었고, 은행알을 후두둑 떨어뜨린 바람을 멀찍이 보내며 은행나무가 노랗게 웃는다. 헛헛한 웃음이다. 이별, 헤어짐을 그렇게 노상 겪은 나무의 내려놓은 웃음소리를 듣는다.

열매도 보내고 잎도 보내고 그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추위에 죽은 듯 지낼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이별이 더딘 듯 있다. 아직은 작별이 아닌 듯 있다. 하지만 이제 차가운 바람이 모든 것을 갈라놓겠지...

그렇지만 모두 어디로 가고 사라지겠지만

나무는 그 자리에서 다음 희망을 참고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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