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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Aug 25. 2016

8월 마지막 주에 읽었다

1. 판단은 독자에게 / 시사in / 고제규 편집국장 / 2016.08.22


저널리즘을 전공할 때 들었던 수업에서 교수들은 건강한 언론 모델로 해외 매체를 자주 꼽았다. 구독 대 광고 수입 비중이 60% 대 40%, 70% 대 30% 정도 되어야 건강한 매체라고 했다. 현재 <시사IN>이 그렇다.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창간한 탓인지 출발부터 기업 광고가 거의 없었다. 진성 독자가 수익의 전부였다. 광고팀 식구들이 발로 뛰면서 광고 수익도 창간 초기에 비해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버팀목인 독자들 가운데 일부가 화가 났나 보다. 이번 주 판매팀으로 항의 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왔다. 절독하겠다는 전화였다. 메갈리아 사태와 관련된, 기자의 칼럼과 외부 필자의 칼럼을 문제 삼았다.


<시사IN> 편집국은 최대한 기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매주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쓰겠다고 발제를 하면 가급적 그 기획안을 존중한다. 성우가 메갈리아 티셔츠 때문에 게임회사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한 사건이 터졌을 때, 한 기자가 쓰겠다고 했다. “새로운 팩트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이미 보도된 내용을 반복하는 동어반복성 기사는 안 된다고 잘랐다. 그 뒤 메갈리아 사태는 확전되었다. 또 다른 기자가 그 논쟁을 다루겠다고 발제했다. 새로운 시각이 담긴 기획이 아니었다. 잘랐다. 대신 천관율 기자에게 데이터에 근거한 기사를 기획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3주 가까이 준비한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올린다.


<시사저널>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성우제 선배가 최근 자신이 겪은 열두 명 스승을 다룬 <딸깍 열어주다>라는 책을 냈다. 내가 수습기자 시절 겪은 두 선배 이야기도 담겼다. ‘안깡’으로 불린, 베트남전 최후의 종군기자로 유명한 안병찬 선배와 ‘김국’으로 불린, 지금은 소설가로 이름을 날린 김훈 선배다. 안깡이나 김국은 팩트를 꾸역꾸역 기사에 밟아 담으라고 했다. 둘 다 ‘팩트 신봉자’였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라고 했다. 굳이 두 선배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 커버스토리 역시 팩트를 담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커버스토리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예상된다. 이 기사 때문에 절독하겠다는 구독자 의사도 나는 소비자 권리로서 존중한다. 다만 하나만 부탁드린다. 절독을 하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분석 기사 등 그동안 <시사IN>이 보도한 기사들을 한 번쯤은 떠올려주기 바란다.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기사가 아니었다. 팩트와 심층 분석에 충실한 기사였다.


<시사IN>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들어온다. <시사IN>이 창간하며 내건 사시로 답변을 대신 드리겠다. <시사IN>은 모든 권력과 성역으로부터 독립된 언론, 현상 너머 이면을 탐사하는 언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통찰하는 언론을 지향한다. 이번 커버스토리 역시 <시사IN> 사시에 어긋나지 않은 기사라고 감히 답을 드린다.


http://m.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6753


누가 뭐라해도 시사인 좋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은 돈이 되지요.


2. [청춘직설] 그냥과 대충 / 오은 / 경향신문 / 2016.08.24


“요새 하는 일은 잘되고 있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직장을 다니다 최근에 큰맘 먹고 사진관을 연 친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냥 그렇지 뭐.” 그 친구가 되물었다. “너는 좀 어때?” “그냥 그래.” 둘 사이에 앉아 있던 친구가 잔을 높이 치들며 외쳤다. “다 그렇지 뭐. 그냥 술이나 마시자!” 우리는 힘차게 잔을 부딪쳤지만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나눌 때의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미 깨진 뒤였다. 과거는 견뎌내서 아름다운 시간이었지만 현재는 우리가 관통해야 할 무시무시한 시간이었다.

...

“그냥”이라는 말은 대화를 이어나가는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올 때마다 늘 가슴에 무거운 돌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속내를 감추고 정말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함구하면서, 그냥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말았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취향이 뚜렷했던 우리는 이제 적당한 것,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을 가늠하고 거기에 스스로를 맞추려 노력하고 있었다.

...

밖에 나오니 아주머니 한 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냥이 아닌 필시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편의점으로 새벽에 팔 물건들을 나르는 청년도 있었다. 액체가 든 용기가 엎어질지 몰라 조심스레 운반하고 있었다. 결코 대충이 아니었다. 그냥으로 나를 감추고 대충으로 남의 눈을 속이던 요즘의 나 자신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취향과 감정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좋은 문장은 절대로 대충 쓰이지 않는다. 하는 일이 아무리 익숙해져도 결코 그냥 하지는 않아야겠다고, 결코 대충 하지는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8232043005


정말로 한 글자 한 글자 다 필사하고 싶을 정도로 좋군요... 

오은 시인님은 단어의 맛을 제대로 아시는 분 같다.


3. 이성복의 공부 / 이우성 / arena / 2015.03월호


선생님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름다움이 뭐예요? 어떤 시, 어떤 소설, 어떤 영화, 어떤 미술이 아름다운 거예요? 

일본 중세에 ‘노[能]’의 미학자로 제아미(世阿彌)라는 분이 있어요. 이 분이 아름다움을 아홉 단계로 나눴어요. 그 가운데 3등이 뭐냐면, 하얀 은그릇에 흰 눈이 소복이 담긴 상태예요[銀玩裏盛雪].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 3등밖에 안 돼요. 

다음은 눈이 천개의 산을 덮었는데, 하나의 봉우리에만 안 덮여 있어요[雪覆千山 爲其?高峯不白]. 이것도 너무 아름답지요. 하지만 2등일 뿐이에요. 1등은 뭘까요? ‘신라의 밤중에 해가 빛난다[新羅夜半日頭明]’라고 했어요. 한밤에 해가 빛나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언어도단의 세계예요. 당시 중국에서 신라는 아주 먼 나라로 생각되었어요.

저는 셋 다 일등이에요. 그런데 ‘신라의 밤중에 해가 빛난다’라는 말이 제일 멋진 거 같아요. 

3등은 왜 예쁠까요? 동일성이지요. 흰 눈에 흰 그릇이니 동일성이잖아요. 2등은 차별성이에요. 모든 봉우리가 하얀데 봉우리 하나만 까맣게 드러나니 말이에요. 어떻든 3등과 2등, 동일성과 차별성은 현세에 있는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신라의 밤중에 해가 빛난다’는 것은 현실 경계를 넘어간 거예요. 

다시 말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아름다움이지요. 지금 제가 쓰는 글은 몇 등 정도 되겠어요? 5, 60등 정도 되려나? 글은 한 편 쓰나 천 편 쓰나 차이가 없어요. 한 편, 한 편에 천 편의 수준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한 편이 수준미달이면 아무것도 안 쓴 거나 마찬가지예요.


...

그런데 패턴을 추구하는 여러 분야 가운데, 가장 무질서하고 일관성 없는 게 시가 아닐까 생각해요.

왜요?

음악이나 수학, 회화에 이용되는 재료들, 소리나 숫자나 색채는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하지만 시에 쓰이는 언어는 더할 나위 없이 불순하고 부조리한 재료라 할 수 있어요. 예컨대 ‘오월’이라 하면 미국에선 ‘메이퀸’을 연상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선 ‘광주 항쟁’을 생각하게 되지요.

수학과 음악과 회화 같은 것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재료를 사용하지만, 시의 재료인 언어는 국가와 민족, 역사와 환경의 제약을 받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탁월한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를 즉물적으로, 즉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령 음악이나 수학은 ‘똥’ 이야기는 못 하잖아요. 피나 정액, 살인, 강간, 질투, 증오 같은 것을 어떻게 음악이나 회화로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언어는 실제적인 삶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도구예요. 달리 말하면 언어는 우리 삶의 최전선(最前線)이지요. 

만약 언어가 없다면, 우리 몸에서 모세혈관이 못 미치는 부위가 썩어버리듯이, 우리 삶도 그렇게 되고 말 거예요. 그처럼 언어는 대단하고 소중한 거예요. 그럼 이미 답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시가 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http://navercast.naver.com/mobile_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84501


이건 가끔 읽고 싶을 때마다 읽는 이성복 선생님 인터뷰. 


4. [청춘시대], 여성들의 멜로드라마/ 임수연 / ize / 2016.08.22


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잠재적인 연애 대상인 남자가 아닌,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여성들을 통해 발견되고, 완성된다.

물론 [청춘시대]는 주변 남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벨 에포크의 여성들과 그들의 로맨스에 대한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는다. 이로 인해 여성들의 로맨스가 섹슈얼한 감정까지 내포할 거라 짐작하는 시각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조금씩 피해나간다. 극 중 아무런 로맨스의 암시도 없던 지원이나 이나의 친구에게마저 연애 감정 가능성을 인터뷰하는 것은 전개상 낭비에 가깝다. 그 결과 여성들의 관계는 한국 사회에서 보다 안전하게 보일 수 있는 영역에서만 말할 수 있다. 급진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온건하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들을 내세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자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82109567259473


그럼에도 캐릭터 다들 멋짐 터짐. 나는 지원과 이나가 제일 좋다. 



5. 모르는 세상 / 박정민 / topclass / 2016.08월호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그런 세상과 맞닥뜨려 그 세상의 말과 행동들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이해를 해야 하고, 흉내를 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그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느낄 때도 있다. 참 많이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카메라 앞에서 흉내내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실제에 비했을 때, 코딱지에 코가 있다면 그 코에 붙은 코딱지 수준이다. 모두들 참 열심히 살더라는 것이다. 군말 좀 하면 어떤가. 꿋꿋하게 계속 해나가는 그들이 전부 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 제 역할을 못하면 좀 어떤가. 그들에게는 그렇게 힘들고 버티고 이겨낼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개똥도 똥파리의 식량이고, 암세포도 생명이 있는데… 인생의 네 번째 실수를 저질렀… 1글 4실수. 실수류 갑.


모르는 것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뭘 모르는 소리가 됐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기도 하고, 땐 굴뚝에 연기가 아니 나기도 하고, 그 연기들이 어디까지 피워 나갈지 알 수 없는 시대다. (갑자기 막 속담 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J&tnu=201608100023




기다렸다가 챙겨보는 박정민의 언희! 이번 것 역시 재치 넘치고 글빨 넘치고.

언제나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고 헤아려보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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