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7년 5월에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내가 먹던 약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신경안정제 이렇게 세 알이었다. 2019년에 조울증으로 재진단받으며 먹는 약은 늘었지만, 과연 약을 복용한 것만이 나를 지금까지 살게 해 주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우울증을 겪으며 극심한 불안 또한 겪었는데, 어쩐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늘 안절부절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나를 운동하게 하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에게서 얻지 못한 것들을 타인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정신적 문제의 원인은 가족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부모님을 용서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내 우울과 불안의 원인을 제공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딸이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보수적인 부모님을 나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고, 그들은 나이 들어갔고, 수없이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하던 나도 나이를 먹어가며 나아지는 듯했다.
처음 응급실에 실려갔던 날 의사는 나에게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다. 난 “약으로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해치지 못해 안달 난 것 같았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살아가며 스스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말이다. 몇 번을 응급실을 갔다. 정신 병동에 입원을 했다. 입원한 나를 엄마는 매일 같이 보러 왔다. 그때 부모님은 몰라보게 살이 빠져 있었다.
이제 우리는 사이좋게 살이 올라 있다. 나는 더 이상 병을 숨기지 않는다. 부모님은 어서 약을 끊으라고 보채지 않는다. 가끔 병원에 데려다주시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게, 그래서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이 들어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다가도, 자살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살이 쪘든 아니든 지금이 행복하면 된 것 아니냐고 게으름을 합리화하다가도 스스로가 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올해, 새해를 맞으며 여러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고 만났는데 다들 올해 계획에 대해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살아 있기에 급급해서 미래에 대한 어떠한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내가 못나게 느껴졌다. 올 해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까. 누구나 꿈꾸는 미래가 나에게는 없다는 창피한 고백을 살며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