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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사 Oct 22. 2023

가장 숨죽여 우는 사람을 알고 있다

영화 <여자, 정혜>

  가장 숨죽여 우는 사람을 알고 있다. 


  사람은 가장 조용하고 평화롭게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영화 <여자, 정혜>에는 침묵이 흐른다. 단조로운 일상을 흐르는 침묵. 주인공 정혜의 말은 거의가 대답이다.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무언가를 제안하지도 않는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반복된 삶, 늘 가는 식당, 그리고 혼자 사는 집.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삶에선 종종 과거의 나날이 틈입한다. 반복되는 현재가 아닌 반복되는 과거를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어릴 적 상처, 그 시점에서 멈춰버렸다.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그녀의 과거는 반복됐다. 고정되고 안정된 일상을 비추는 카메라는 늘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불현듯 떠오르는 엄마는 곁에 없고, 어릴 적 성폭행을 당한 기억은 아직도 정혜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정혜는 상처를 홀로 삼키며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속에 품은 칼을 쥐고 가해자를 찾아갔을 때, 결국 상처를 입은 것은 칼을 쥐고 있던 정혜, 자신이었다. 칼에 베인 손을 닦으며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우는 정혜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처음으로 들리는 울음소리에 이어, 순간 음소거된 채로 몇 분간 그녀의 울음이 이어진다.      


  이 음소거된 장면은 앞선 한 시간이 넘는 장면에서 보인 침묵의 의미를 말해준다. 고요한 일상과 침묵이 흐르는 집안에서 정혜는 늘 홀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멍하니 있는 모습과, 평화로운 하루를 담는 장면에서도 정혜를 비추는 카메라가 늘 흔들렸던 이유이다. 카메라는 단조로움 속에 삭인 눈물을 말하고 있었다.      


  나도 가장 숨죽여 우는 사람을 알고 있다. 침묵이 정혜의 울음소리라면 그녀에겐 발라드가 울음소리였다.     

  세상을 알기 전, ‘나’에 대해 배우기도 전에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엄마’였다. 어릴 적 내게 엄마는 나의 세상이었다. 그녀는 내가 잠든 새벽이면 혼자 방에 들어가서 몰래 울었다. 울적할 때면 혼자 발라드 노래를 틀며 눈물을 삭였다. 새벽에 방문을 닫는 소리가, 발라드 소리가 나에겐 엄마의 울음소리였다.      


  왕복 두 시간을 통학하면서도 노래를 듣지 않고 멍하니 창만 바라보던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던 친구에게 차마 못 했던 말이다. 내게 노래의 서정성은 눈물의 무작위성보다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고, 반복되는 후렴구는 돌고 돌아오는 그녀의 슬픔을 연상시킬 뿐이었다.     


  눈물이 내는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알아챌 때, 숨죽여 기도한다. 소리가 멈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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