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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사 Aug 03. 2023

피터팬의 눈을 가진 사람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그들의 상실을 달랠 방법이라곤 시간의 흐름뿐이었지만, 시간은 늘 우리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본인의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계속 아이로 살아가고, 어떤 이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버리고, 어떤 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 몸부림친다.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피터팬>의 작가 배리가 <피터팬>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극 중 배리는 남편과 사별한 실비아와 그의 네 명의 아들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며 그들에게 받은 영감으로 <피터팬>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유부남과 미망인의 우정은 추문으로 확산되고, 이에 실비아의 어머니는 배리에게 모진 말을 하며 그들의 만남을 반대한다. 


할머니는 그저 엄마가 상처받을까 걱정돼서...

  이 대사는 그 상황을 지켜본 실비아의 첫째 아들 조지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다. 끝맺지 못한 저 문장은 아이가 얼마나 많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말해준다. 할머니, 엄마, 배리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지만 서로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 그 상황을 이해하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어서 시작한 문장이고 아직은 아이여서 끝맺지 못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들은 배리는 말한다. 


아이는 사라졌어. 지난 30초 사이에 넌 어른이 됐다.    

  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순간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라고 있던 어른을 꺼낼 때 발생한다. 어른을 대신해야 할 위치에 놓일 때, 어른과 함께 짐을 짊어져야 할 때,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될 때 아이는 자기 안의 어른을 꺼낸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우리는 깨닫는다.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니다.’     


  실비아의 셋째 아들 피터는 어른이 되고 싶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아이다. 피터를 보며 배리는 말한다. 


너무 빨리 자라려고 한다. 어른들은 애들만큼 상처를 안 받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배리는 어떻게 이런 순간들을 잘 포착할 수 있는 걸까. 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는 순간과, 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순간. 그 순간이 일어나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그들의 감정들도. 그건 배리 역시 실비아의 아들들과 비슷한 상실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형의 죽음과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위해, 형의 인생을 살아온 배리. 형으로 살아가는 순간부터 진짜 배리는 아이인 채로 멈춰버렸다.    

  

  어른이 아이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를 미숙한 존재로 치부하게 된다. 아이에게 말할 땐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어려운 말은 아이를 개의치 않고 마음 놓고 한다. 아이는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른이 행간을 읽는다면 아이는 숨을 읽는다. 그 분위기를 읽는다. 그렇게 읽어냈던 어린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안다. 아이가 느끼는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몇 안 되는 단어와 경험한 약간의 세상만으로도 아이는 명도와 채도를 조절해 가며 여러 세상을 이해한다. 아이도 다 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순순하거나, 아이였을 때 차마 잊지 못할 사건을 마주한 사람이다. 삶이 달라져버린 사건을 마주해서 마음속 어딘가에 계속 아이를 품게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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