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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사 Oct 22. 2023

성장 드라마에선 모든 순간이 빛난다

영화 <영원한 여름>

  장르를 다르게 해석하는 순간 이해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영원한 여름>은 퀴어, 로맨스 영화라고 분류되어 있다. 영화에는 조나단, 셰인이라는 두 명의 남자와 캐리라는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세 명은 서로가 삼각관계인 듯, 절친인 듯 그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방황하지만 방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아리송한 남자들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쟁취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캐리. 처음에는 여자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았다. 적극적인 것도 소극적인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남자들의 로맨스에 혼자 동떨어져 보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조나단과 처음 키스를 한 것도 캐리였고, 셰인이 고백한 것도 캐리였지만 어릴 적부터 시작된 조나단과 셰인의 관계 속에서는 캐리의 자리가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캐리라는 인물은 소비되지도 소외되지도 않으며 영화에 굳게 자리 잡았다. 캐리라는 인물 때문에 영화를 다시 봤다. 다시 보면서 이 영화는 로맨스가 아닌 성장 드라마라는 것을 알았다.     


  장르를 성장 드라마라고 이해하는 순간 모든 장면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남자 둘이 아닌, 남녀 세 사람이었고 그들은 어설프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순간의 감정을 따라갔다. 이야기는 캐리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홍콩에서 아빠와 살던 캐리는 전화 한 통만 남긴 채 엄마가 있는 대만으로 훌쩍 떠나온다. 초반에 잠시 등장한 그녀의 가정사는 이후에 펼쳐지는 그녀의 행동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은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이 흘러간다는 것을 일찍이 배운 아이는 마음 한편에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늘 쥐고 있다. 사랑과 우정을 사이에 놓인 남자들 틈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며 늘 그들 곁에 있는 것. 그 소극적이고도 애매해 보이는 태도는 그녀가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외곽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던할 줄 아는 것,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소중히 다루는 것.      


  이렇게 바라보고 나면 성장 드라마라는 장르 속에서 가장 큰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인물은 캐리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말미에서 세 사람은 바다로 향한다. 바다에 도착한 조나단과 셰인은 몸싸움하며 서로의 진심을 꺼내놓는다. 셰인을 사랑하는 조나단. 어릴 적부터 ADHD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셰인에게 유일하게 다가온 친구였던 조나단. 그래서 조나단을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웠던 셰인. 서로 다른 벽에 갇혀 외로웠던 조나단과 셰인의 진심을 지켜보며 우는 캐리.      


  외로운 아이들의 사랑과 우정 사이를 넘나드는 성장통. 함께 있어 괴로우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세 사람의 성장통과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여름을 담고 있는 영화. 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이야기는 각 인물의 성장 드라마를 내포하고 있다. 성장의 속도와 방향은 다를지언정 각 장르는 분명 성장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갈피를 잃은 아리송한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이 상황이 지닌 성장점을 찾아보면 그 순간이 다르게 이해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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