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치앙마이]
치앙마이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은 총성으로 눈을 떴고, 허리를 반쯤만 세운 자세로 1분 정도를 소리에 집중했다. 기계소리라고 하기에는 비 규칙적이었고, 그 외에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태국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다. 그런데 총이 너무 비싸서 일반인들이 쉽게 소지하지 못한다고 하는 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지식을 여행 전에 알게 되었고, 잡지식이 이 상황을 더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굴려 간신히 떠올린 아이디어는 카톡 오픈 채팅이었다. 아침 9시부터 총소리 못 들었냐며 단톡방에서 혼자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총 90명이 있는 방에서 읽지 않은 사람의 숫자가 10명까지 줄었지만 대답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간혹 대답하는 사람들은 총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프닝은 호들갑으로 끝났다. 아직도 그때 그 소리가 뭔지 모른다. 웃긴 것은 채팅방에서 난리를 피우다 어떤 사람이 도이수텝을 같이 가자 제안했고, 평소라면 생각할 것 없이 거절했을 일인데 상황 때문에 바짝 긴장한 탓에 수락했다. 그렇게 우연히 친구가 생겼다.
도이수텝을 가기 위해서는 택시나 썽태우를 타야 했다. 여행 전 인터넷 서칭 하면서 알게 된 썽태우는 태국의 주요 교통수단 중에 하나이며, 트럭을 개조한 차 뒤쪽에 버스처럼 타고 기사에게 돈을 내는 방식이다. 태국을 전체 돌아본 결과 지역마다 책정되는 가격이 다 달랐다. 시골이라서 더 저렴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방콕 외곽에서 탔던 썽태우는 10밧으로 가장 저렴하기도 했다. 또 어떤 썽태우는 셔틀이나 마을버스처럼 일정 루트를 가지고 운행하기도 하지만 또 손님의 목적지에 따라 자유롭기도 하다. 관광지화 된 곳은 주민과 관광객의 금액을 다르게 받기도 했다. 나에게 썽태우는 태국여행 중에 주 교통수단이기도 했고,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이 얽혀있어 정이 아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첫날의 썽태우는 미지의 세계에 불과했다. 개념도 정확하지 않고, 기사님과 가격협상도 해야 한다는 것에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혼자였으면 돈을 많이 내고 택시를 탔을 수도 있었지만, 준영이와 함께 시도해보는 거라 용기가 생겼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첫 썽태우에 올라탔다. 아직도 기억난다. 아주 더운 날이었는데, 트럭 같은 것 뒷자리에 구부정하게 앉아 실려가는 기분은 이미 만렙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도이수텝으로 올라가는 저렴한 썽태우를 다시 타기 위해 치앙마이대학 근처에서 내려야 했다. 여기서 힘을 좀 많이 뺐다. 길을 잘못 알아들어서 우리는 10분이면 될 거리를 학교를 반 바퀴 뺑 돌아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썽태우 정류소를 찾았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끝이 아니었다. 10명을 채워야 출발한다는 데, 기다리는 사람은 나와 준영이 둘 뿐이었다. 30분 정도 실랑이 끝에 중국인 6명과 함께 출발했다. 늘 느끼는 건데 중국인들은 내 편일 때 너무 든든하다.
사원은 온통 금색으로 가득했고, 가드닝이 아주 멋졌다. 바닥 타일이 화려하면서도 패턴이 너무 멋져 집에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한국의 수수하고 절제미 있는 불교문화와 달리 화려한 태국의 불교문화는 확실히 이국적이었다. 지금 그때의 기분을 되돌려보려 노력할 때마다 마지막 여행지인 미얀마에서 만난 수많은 황금사원이 끼어들어 도통 도이수텝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도이수텝은 입장료가 있다고 했는 데, 어떻게 하다 보니 내지 않고 구경을 했다. 여기서 제일 기억 남는 건 아무래도 유명한 포토스폿인 큰 기둥에서 사진 찍기 미션이었다. 큰 네 기 둥이 있는, 정확하게 무슨 공간인지 모르겠지만 멋있고 웅장한 그곳에서 사진 찍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준영이가 원하는 각도가 있었는 데, 기둥 네 개가 다 나와야 하는 거라 그 공간 전체를 찍어야 했다. 또 그 정 가운데에 피사체를 두는 거라 정말 어려웠다. 찍을만하면 사람들이 꼭 몰려오고, 그중 하이라이트는 스머프 색 카라 티셔츠를 입은 단체 관광객이었다. 10명남짓 한 조를 이루는 그룹은 30분 내내 2-3분 간격으로 나타났다. 한 조가 사라질 때 새로운 조가 올라오는 식이었다. 첫 사원에서 제일 기억 남는 게 스머프 관광단체가 될 줄이야.
해가 없었지만 찜통 같은 날씨였다. 도이수텝을 찾는 일에 힘을 너무 뺐는지 집에 가서 샤워하고 쉬는 일이 간절했다. 준영이와 저녁을 약속하고 각자 숙소로 헤어졌다. 집 가는 길에 골목에 있던 꼬치집에서 꼬치 몇 개를 사서 들어갔다.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일정은 오전 관광 후 2-3시쯤에 숙소로 귀가해 샤워 후, 쉬다가 5시쯤에 저녁 식사 겸 저녁 관광을 시작하는 것으로 고정됐다. 추위는 힘들어도 더위는 잘 견디는 체질이라 큰 걱정 없었는 데, 정말 더웠다.
저녁으로 준영이가 찾은 식당을 갔는데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주변 식당들이 유난히 휑한 것과 대조되었다. 메뉴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항아리 같은 두 개에 한 곳은 샤부샤부처럼 데쳐먹는 것이고, 한 곳은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었다. 화로와 항아리의 생김새가 고대 유물 같았다. 육류도 있고, 해산물도 있었다. 무한 리필 뷔페처럼 일정 금액을 내고 무한으로 먹는 방식이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고, 가게가 문이 없이 완전히 오픈된 건물 형태였다. 넓은 공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보이던 몇 개의 선풍기에 의지해 불에 타는 두 항아리 앞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데 너무 더워서 솔직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화로에 구운 고기야 당연히 맛있을 거고, 더워서 맥주만 계속 홀짝이다 보니 취기만 올랐다. 식당에는 관광객보다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그렇게 더운 곳에서 식사를 다들 너무 즐기는 것 같아 너무 신기했다.
아무 계획 없던 첫날은 준영이의 등장으로 꽤 알찬 하루가 되었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어떤 포인트중 하나이다. 우연히 이루어져 뜻하지 않게 풍성해진 하루. 그것이 모인 것이 여행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