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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Apr 26. 2020

결혼식에서

울보는 결혼식장에 안 들여보내 주지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엊그제 다녀온 사촌오빠 장례식 이후

감정이 약간 울렁거린다.

오랜만이다.


결혼식장에 가면 나는 늘 울보가 된다.

부모에게 인사하는 절차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에게 잘하냐고 하면

뭐 하는 게 없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너무 잘하는 게 없어서 말이다.


부모님은 기독교다.

아니 우리 집안 전체가 기독교다.

어릴 때 교회를 안 가면 우리 엄마는 밥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나는 모태신앙이고 계속 그렇게 길러졌다.


그것이 싫고 불합리하다는 걸 자각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태어났는데 불교 집안이면 나는 불교도요

천주교 집안이면 천주교도인 것이다.

나는 그냥 전통적으로, 관습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인 것이 못마땅했다.


오랜 시간 나는 죄인이었다.

그 점이 나를 목 조르고 미치게 하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자면 실상 기독교의 진심은

무엇일까를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지금과 같은 온갖 전쟁과 종교로 인한 여러 분쟁들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술과 담배를 하고 안 하고를 거론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동성애든 매음 등의 윤락 행위에 대해서도 법적 잣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이든 하나님이든 말이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교회를 일요일에 빠졌다고 벌을 받을 걸 생각해야 하지? 그런 신이라면 안 믿고 말겠다 싶었다.

그 생각을 머리 밖으로 꺼내는 순간 엄마는 한탄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사랑하는 일이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쉽다. 그런 관계는 그냥 말하자면 적당히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지도 몇 년 되지 않은 데다 그 방법이 자꾸 삐그덕 댄다. 기름칠을 안 한 기계처럼.



다시 결혼식으로 돌아가서 신부는 예뻤고 신랑은 늠름했다. 양가 가족은 모두 멋지고 사랑이 넘쳐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 오늘은 눈물이 안 난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린 엄마와 교회를 다녀온 아빠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 질렸기 때문이다.

대체 결혼이란 뭘까.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도 한 치의 양보를 할 수 없는 관계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맺어진 것일까.



정작 그 시간엔 눈물이 안 나고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바탕 울고 싶었는데 다행으로 지인이 있었다. 예식장에 가는 일이, 그곳에서 눈물을 찍어내는 일이 부모님을 향한 속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징징거리는 울보는 미리 검사해서 예식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남의 좋은 날 자기만의 감상에 빠져서 울고 있는

울보라니.






오늘의 나는 배회하고 있다.






2020.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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