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그리고 여성의 날
#10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0
오늘은 3월 하고 8일이다. 내가 이렇게 날짜를 쓰는 건 대개가 뭐가 떠오르지 않을 때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한다. 여성의 날이란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굳이 연결해 보자면 엄마도 나도 여성이다.
오늘 보니까 산수유가 곳곳에 노랗게 폈다. 산수유가 피고 오늘은 거리를 걷는데 정말 따뜻하다. 겨우내 입었던 이 북극곰 같은 털 점퍼가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 정도. 우리 엄마는 검정고시 과정을 60살이 넘어서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과정을 패스했다. 나는 엄마가 그저 그 옛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환경에 대한 한으로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증서를 따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후에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지만 아빠는 맹렬히 반대했다. 뭔가를 많이 아는 여자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엄마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한 반에 60명이 넘게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1등을 하던 아이였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내 눈에 우리 엄마는 언제나 우울하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해서 실수를 연발하는 엄마다. 예전의 일이 떠오른다. 엄마가 교회에서 구역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찬송가를 부르는 날이었는데 소개를 하면서 좌, 우를 헷갈렸다. 엄마가 구역장인데 우리 엄마는 오른쪽, 왼쪽을 헷갈릴 정도라는 것이 나는 순간 부끄러웠다. 그게 뭐라고. 물론 바로 다시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지만 나는 학교에서 1등을 했을 엄마를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공부를 좋아했던 것.
나는 공부를 좋아한 적이 없다. 공부를 하려고 할 때 내 머리는 어느새 숲 속을 헤매거나 신나게 하늘을 날거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아……. 이쯤에서 나는 인정을 해야겠다. 나는 나의 잣대로 엄마를 무시하고 있었던 거다. 부끄럽다. 맨날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우울하고, 어린 시절의 감옥에서 절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힘껏 미워했다. 나는 엄마가 미웠다. 술 먹고 날뛰는 아빠를 어쩌지 못하는 것도 엄마를 탓하고 싶었다. 엄마는 혼자서 어쩌지 못하는 건데…….
엄마한테 보드라운 강아지처럼 대하고 싶은데 실상은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고양이처럼 군다.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한다. ‘분명 이 글을 쓰다가 나는 펑펑~ 미친 듯이 한 번은 울겠구나.’ 부모와 자식이 어떤 적절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나는 참 못 됐다. 그렇게 착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 좋은 사람이고 싶다. 엄마를 무시하고 있던 속마음을 오늘은 낱낱이 들킨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다.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진다. 이쯤까지 내 생각이 흐르면 드는 생각이 있다.
혈연관계로 묶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관계의 기초 단위가 혈연으로 묶이지 않으면 정말 좋겠다. 그럼 아주 심플할 것 같다. 그냥 잘하기 어렵다고 없애버리겠다는 나의 이 생각에 진짜 또 말문이 막힌다.
글을 쓰니까 확실히 기억나지 않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 사건 속에 있는 나를 보고 그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또 본다. 그것이 글의 가장 큰 장점 같다. 오늘의 글에서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엄마는 아직도 하루 아니면 이틀 거의 일주일에 몇 번은 운다. 내가 상담을 받아보자고 하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도 두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엄마라는 문을 두드려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훌륭하지도 꽤나 괜찮지는 않지만 엄마의 딸의 도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