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고선영 Mar 22. 2021

꿈속에서

#19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9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9



  고소한 견과류가 살짝 씹히고 라즈베리도 입 안을 즐겁게 한다. 깨 맛이 강하다. 이 빵의 이름은 ‘우장산 건강빵’이다. 웃음이 난다. 그 제목이 너무 담백하면서 귀엽게 느껴진다. 커피도 토요일에 커피상담원에서 드립백을 샀는데 사장님이 코스타리카 커피를 맛보라고 넣어준 걸 내렸다. 향이 너무 좋다. 티백을 꺼낼 때 퍼지는 신선한 향이 마스크를 뚫었다. 너무 기분 좋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에 하나도 생기가 없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겨우 먹었다. 꾸역꾸역 먹고 나왔는데 책방으로 발길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또 산책을 왔다. 걸었다. 절반쯤 걸었을 때에도 내 몸의 세포들은 아직 덜 깨고 생기가 없다. 한 바퀴쯤 걸었을 때 서서히 내 발이 땅과 힘찬 밀고 당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살아 있다. 내 몸에 생기가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땅 아래로 꺼지는 기분이다. 어제 온종일 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계속 자고 또 잤다. 누가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계속 잠을 잤다. 이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에 아주 적절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2박 3일도 잠깐씩 깨거나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것 빼고는 자는 것 말이다.


 꿈을 꿨다. 꿈속에서 너무너무 매력적인 남자가 나왔다. 그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계속 나를 어루만졌다. 그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서 나는 이 순간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교회를 가는 문제로 서로 다투는 소리에 깼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한테 화가 났다. 아빠가 또 엄마를 긁는 소리를 하는 순간 내가 소리를 미친 듯이 지른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서로 살살 약 올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다. 그런 걸 즐기는 신이라면 안 믿는 게 낫다. 속마음은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내가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몸도 정신도 덜 깬 상황에서 엄마, 아빠에게 화를 다다다~ 낸 나에게 놀랐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에도 꿈에서 어떤 남자가 나왔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 둘이 차를 마셨는지,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도 너무 따뜻하고 좋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 남자가 좋았던 것인지, 그 남자와 나눈 대화가 좋았던 것인지, 그곳에 내리쬐던 햇빛이 좋았던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지금 정오를 넘긴 이 시간에는 더더군다나 기억에 없다. 그러나 좋았다. 분명히 좋았다. 시공간을 잊고 꿈속에 있었는데 하루 온종일 자는 걸 보니 엄마가 걱정이 된 모양이다. 엄마는 밥 먹으라고 나를 깨웠다. 나는 너무 절망했다. 이 꿈도 너무 좋은 꿈이었는데... 나는 그 꿈속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나는 불같은 화를 가까스로 참았다.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서 문득 생각했다. 지금이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지? 내가 이렇게 온종일 자도 되는 걸까? 그런데 머릿속이 엉킨 것처럼 나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 심지어 내가 인간인지 아닌지 조차도 가물가물하다. 그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 잠에서 갓 깬 나를 보는 일은 몹시 낯설다. 그렇다고 싫은 것은 아니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상태. 그런 때가 가끔 있다.


  엄마는 늘 걱정한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고 나에게 건강한 사랑을 주었으면...

그러나 엄마는 모른다.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걱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도 나의 착각일까. 나는 모르겠다. 토요일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나에게 해 준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네가 해 본 일도 아닌데 마이너스가 안 났다면 그것만으로도 잘한 거야.”

 “고선영을 믿어 봐.”


내가 지금 어떤 것 때문에 힘든지를 이야기하다가 이 말을 친구가 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몸이 약해져서 맘이 약해진 건지, 맘이 약해져서 몸이 약해진 건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 살맛이 나고 감사한 일 투성이지만 여전히 나는 큰 위로가 필요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위로하듯 나도 때때로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오늘은 나에게 큰 사랑과 위로를 보내줘야겠다. 지금의 고선영은 진심으로 잘하고 있다. 그리고 고선영을 믿어. 고선영 많이 많이 사랑해. 네가 원하는 속도와 결과가 지금 너에게 오지 않았다고 해도 너에게는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거야. 힘 내. 고선영.

작가의 이전글 아침, 가라앉은 나를 일으켜 세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