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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Apr 02. 2021

한 가지에 푹 빠져 본 적 있어요?

dialogue etc

 #B대면데이트 #대화 #3 #한가지에빠져본적있어요 #작가고선영




뭐 한 가지에 푸~~욱 빠져본 적 있어요?




     이런 적은 꽤 많은 것 같아요. 질문에 토 달지 말자고 맘을 먹었는데도 질문을 좀 달리해주시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하네요. 우선... 사람한테 빠져본 적 있어요. 오로지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그 사람 얼굴만 하루 온종일 바라봐도 좋겠다 생각한 적이요. 내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던 적 있어요. 처음부터 좋아했냐고요? 아뇨. 전혀요. 서로의 첫인상은 완전 별로였어요. 저도 그 사람을 껄렁껄렁하게 봤고, 그 사람은 나를 좀 뚱하고 반항심이 가득하게 봤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껄렁껄렁하게 보였어요. 나중엔 그 사람만 볼드 처리된 것처럼 진하게 보이고 결국 그렇게 사랑에 빠졌죠.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매력적이라거나 이런 거 모르겠어요. 대단히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꼴 보기 싫은 점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좋았어요. 한참 빠져 있었어요.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건 이야기 안 할래요. 그냥 당신의 상상에 맡길게요. 마지막 이야기는 당신이 써 봐요. 또 한 가지에 푹 빠진 적은 많았어요. 낙서하듯 그림 그리는 거에 푹 빠졌었어요. 어떤 때는 시간이 2시간 반쯤 지나간 것도 모를 정도로 빠져 있었어요. 책도 그래요. 책을 읽을 때 자는 게 너무 아까워서 또는 다 읽어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아껴 읽은 적도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그동안 뭔가에 빠졌던 경험이 많네요. 전 언제 또 뭔가에 빠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뭘까? 그게 누굴까? 그게 언젤까? 뒤따르는 질문들이 많지만 그냥 꼬치꼬치 캐묻지 않을래요. 뭔가에 훅훅~ 빠지는 제가 좋거든요. 잘 빠지는 것이 나라는 사람을 나답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최근에요? 최근에는 대화에 빠져있을 때가 많아요. 대화하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거요. 그거 아주 낭만적이고 철학적인 일 같아요. 서로의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일. 그래서 기분이 묘해져요. 상대가 나의 이야기에 빠져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빛으로 나의 말에 소리 없는 끄덕임을 할 때 영혼이 충만해져요. 그럴 때 그 영혼에 저도 관심이 가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내 이야기가 그 영혼 어디까지 닿았을까 하고요. 어릴 때 집 앞에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 우물은 너무 무겁고 커다란 돌덩이로 닫혀있었는데 전 그 우물이 늘 궁금했어요. 저 속에 시체가 하나쯤 있을까? 아니면 귀신이 산발한 머리를 풀어헤치고 밤마다 나오는 거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그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가 때때로 궁금했어요. 되게 깊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얕은 건 아닐까 상상한 적도 많았죠. 그 우물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을 크게 만들고 결국은 그 속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밀어 넣는 데 성공했어요. 돌멩이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와 울림으로 그 깊이를 그려봤었어요. 그때 저는 우물에 빠져 있었네요. 그런데 영혼에도 깊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깊이는 대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죠. 얼마나 깊은지... 그래서 대화가 즐거워요. 대화는 세상을 여행하는 아주 멋진 방법이에요. 그래서 대화하는 걸 즐겨요. 이건 정말 최근 일이네요. 제가 사람을 좋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얼마든지 뭔가에 홀딱 빠질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런 제가 자랑스럽고 대견하죠. 세상을 향해 돌을 집어던지고 있는 거니까요. 오늘 당신과의 대화 즐거웠어요. 생각지 못한 질문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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