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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Dec 30. 2021

목소리

당혹스러운 상상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사람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삼십이 넘었을까? 쉰 갓 지났을까?

얼굴은 희고 동그란 편일까? 아니면 뱃사람처럼 구리 색으로 잘 그을렸을까?

머리스타일은 어떨까? 그 사람의 이름은 무엇일까?

목소리만으로 상상했다가 실제로 얼굴을 확인하고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앵커 김현정을 라디오에서 들리는 목소리만으로 상상했었다.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 왜인지 쌍꺼풀이 진하고 코도 높고 생김도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인터넷으로 찾아본 그 앵커의 얼굴은 한없이 선이 부드럽고 쌍꺼풀도 없이 아주 한국적인 얼굴이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아니야. 저 얼굴이 아닐 거야.라고 머리를 저었다가 그 얼굴을 그리면서 라디오를 들으니 정말 난감한 느낌이었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고 해야 할까.

한참 연관 지어 들으려고 노력했는데 어렵다.

목소리와 얼굴 생김을 딱 맞게 연결 지어 생각하는데 이십 여일 조금 못 걸렸다.

예상외로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나의 생각과 상상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것이 아니다.

목소리는 참 정직하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속 사람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자신감 있는 목소리라도 가만 듣고 또 들어보면 안다.

그 속에 거짓이 있는지, 참이 있는지...

목소리의 기교는 칼을 가는 것과 같아서 갈면 갈수록 예리해진다.

그렇지만 목소리의 음색은 다르다. 그 떨림은 다르다.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알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무리 같은 노래를 잘 부른다 할지라도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만큼

가슴속까지 닿지는 않는다.



#작가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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