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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쓴이 Apr 21. 2023

안녕하신가요, 나의 집

집은 곧  ‘나’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P입니다.


최근에 저는 몸도 마음도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어요. 어떠한 외부 충격 없이 갑자기 허리께에 통증이 오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앓고 있던 아토피가 심해져 밤마다 제 온몸을 긁어대느라 제대로 잠들지 못했습니다. 특히 피부가 가려운 게 너무 괴로웠어요. 속으로만 아프면 참겠는데 제 피부에 상처가 나니까요. 어느 날은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섰는데요. 제 팔이며 다리에 난 상처가 너무 많아서 속상하더라고요. 그와 더불어 최근 제 인생에서 큰 이벤트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에 돌덩이가 하나 얹힌 듯 하~ 하는 한숨도 자주 쉬게 되고요. 입 밖으로 나오는 많은 대사(?)들 중 8할이 부정적인 말이라 주변 사람들이 조금 힘들었을 것도 같아요. (미안)


여하튼 제 몸과 마음이 힘들다 보니 집을 평소와 같은. 단정하고 머물고 싶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치더라고요. 저는 올해로 혼자 산 지 3년이 된 사람입니다. 맨 처음 이 집을 만났을 때 느낀 벅찬 감정, 그리고 집에 가구를 하나씩 들이며 느꼈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 친구들을 초대해 홈파티를 열었던 설렘. 해가 중천에 뜬 오후 잠에서 깨어,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만끽하며 혼자 커피 한잔을 마시던 때도 많았어요. 네, 저는 집순이라는 뜻입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을 사랑하는 저에게 집의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언제나 청결하게 할 거야! 같은 청소 강박은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 불편한 상태로 집을 방치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최근 한 달간 컨디션을 이유로 집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가방걸이에 걸지 않고 선반에 툭 튀어나온 부분에 걸어버린다던가. 읽으려고 사 둔 다양한 책들을 좌식 테이블 위에 널브러트려 놓는다던가. 특히 좌식 테이블에는 제가 먹어야 하는 약봉지들, 발라야 하는 연고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도무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구역이었어요. 또… 싱크 건조대에 있는 그릇들이 며칠간 그 자리에 있기도 하고요. 냉장고에는 날짜가 지난 우유, 언제 사 두었는지 모를. 그런데 상하지도 않는 토마토 (…)와 멋들어진 액자 위에 얇게 쌓인 먼지들. 노트북에 붙은 끈적한 알 수 없는 흔적들.


현관에 서서 정돈되지 않은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맨 처음에 반짝반짝 빛이 나던 집이었는데, 아니. 내가 반짝반짝하게 가꾸던 집이었는데 내가 조금만 방치하니 이렇게 쓸쓸해지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정리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널브러진 잡동사니들은 버리는 게 맞는지 어디다 넣어두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고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안 났습니다.  그런 집을 보니 컨디션이 엉망인 제 상태와 닮아있더군요. 여기저기 상처가 난 팔이며 다리며, 부석한 얼굴피부과 퀭한 눈. 아픈 허리.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그리워졌습니다. 노오란 금빛 햇살을 잔뜩 머금은 우리 집이요. 카스텔라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고, 오래된 맛집처럼 무얼 만들어 먹어도 맛있던 우리 집이요.


오늘은 모처럼 일찍 퇴근 후 곧장 집으로 가 냉장고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잡동사니를 정리해야겠습니다. 또, 청소기를 한번 돌려야겠고 빨래도 해야겠습니다. 장도보고 요리도 해야겠습니다. 오래간만에 배달 요리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멋들어진 식사를 해야겠고요. 잘 치우고, 영화도 한편보고요. 차도 한잔 마시고요. 그렇게 집에게 환기를 더해줘야겠습니다. 나의 공간인 집을 먼지와 무력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내가 주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눅눅한 토요일이 아닌 산뜻한 토요일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가려움도 허리 통증도 말끔하게 낫겠고요. 꼭 그러면 좋겠습니다.


노오란 볕이 집 안을 가득 메우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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