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숲. 가을
숲에서 만난 사람들 : 함께 여행을 온 것만으로도 칭찬받는 사이
계절마다의 색이 있다. 봄이 싱그러운 노랑과 연두라면, 가을은 지는 낙엽의 갈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옷 색과 립스틱 색도 덩달아 어두워진다. 그래서 그런지 어두운 가을은 기분도 함께 착 가라앉는 그런 계절이라 생각했다.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가을이라는 계절이 상상했던 것과 가장 다르다고 했다. 온 세상이 지는 노을빛으로 물들 줄 알았는데 곳곳의 또 다른 꽃들로 알록달록 채워지는 게 꼭 봄 같이 빛나는 계절이라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뜨겁고 끈적한 올해 여름을 보내고 있노라니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도 마음이 일렁거린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던 그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가을은 진한 파랑의 계절이구나. 선명한 쪽빛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풍경은 멍하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숲 해설이 끝난 후 함께 숲을 돌던 이들과 족욕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제법 날씨가 선선해진 듯해서 창문을 활짝 열었더니 에어컨 바람만큼이나 시원한 바람이 훅 밀려 들어왔다. 앉아계신 분들이 동시에 ‘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누군가가 박수를 치니 모두가 덩달아 박수를 쳐주었다. 창문을 여는 행위 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수 있다니, 나는 ‘창문 열고 박수받긴 처음’이라고 멋쩍어 말했다. 서로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라 자연스레 간단한 인사들을 나눴다. 경기도에서 왔다느니, 20주년 결혼기념일로 제주에 왔다는 둥 소소한 이야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주고받다가 누군가의 “정말이요?”하는 말이 솟구쳤다.
“여기 이 두 분은 장모님과 사위래요.”
모두들 당연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 사이로 보았나 보다. 다 같이 “우와~”하고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사위 분이 부끄러운지 여행을 둘만 온 건 아니고 아이가 어려서 아내는 호텔에 있고 장모님 심심해하실까 봐 모시고 나온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장모님 모시고 나온 사위를 모두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나도 저런 사위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셨다. 앞 전의 나의 말을 받아 “창문 여는 것만큼 별거 아닌데 박수받을 수 있는 거네요.”라며 웃으셨다.
여행을 다닐 때 일상적이지 않은 조합들이 있다. 딸들이 엄마를 모시고 여행 오는 경우는 흔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여행은 드물다. 그렇기에 사위가 장모님을 모시고 온다는 건 부러움을 살수 밖에 없다. 사돈끼리 화기애애하게 여행을 오는 경우가 그렇고, 젊은 청년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오셨을 때가 그러했다. 참 특별하고 애틋해 보였다. 일상적이지 않은 조합이라는 건 결국 서로 불편할 수도 있는 관계인데 의외로 친해서 더욱 다정다감하게 보인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기억에 남는 관계들 속에서 두 엄마를 모시고 온 한 여성분이 떠오른다. 낳아 준 엄마와 키워 준 엄마를 모시고 함께 여행을 왔단다. 새엄마라고 하면 계모의 이미지일 것만 같고, 엄마들 사이는 참 안 좋을 것만 같다는 고정관념을 깨 주었다. 두 엄마끼리도 얼마나 살가운지,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한 분은 예쁜 딸 낳아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다른 한 분은 예쁘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분명 두 엄마가 생기기까지의 아픈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의 그늘이 없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막상 이렇게 셋과 함께 걷다 보니 분명 이런 두 엄마의 아래에서 자랐다면 다른 이들보다 곱절로 사랑받고 곱절로 행복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의 관계가 애틋하고 감사한 관계가 될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갈색일 것 같던 가을도 겪어보면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이듯이 어려울 것 같은 사이도 어떤 때에는 훨씬 아름다운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보았다.
숲에서 만난 생명들 : 알고 있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열매들.
누구나가 알아보는 나무인데 그 계절이 아닐 때는 못 알아보는 경우들이 있다. 이맘때쯤 손님들은 도대체 이 열매가 무엇이냐며 자주 물어오는 나무가 있다. 커다란 열매가 단단하게 달려있어서 더 궁금한가 보다. 동백나무라고 답하면 다들 놀라워한다. 빨간 꽃이 펴 있을 때는 당연히 알다가, 열매가 맺는 시기에는 마치 처음 보는 나무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열매껍질의 색이 변하고 그 안의 씨앗이 떨어져 나올 때에는 알아보지만 초록으로 단단히 영글었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벌어진 열매 속 씨앗들을 알알이 주워서 한 자루 가득 담아가면 엄마가 오일장에 가서 동백기름을 짜 오면 목재칠과 머릿기름 등 참 다양하게 사용했다.
늦은 태풍에 비바람이 몰아치면 발밑에 떨어진 또 다른 초록색 열매가 보인다. 조그마한 열매를 볼 때는 처음 보는 열매였다가 반쪽을 쪼개서 보여주면 금세 알아본다. "키위?"
다래나무의 열매이다. 키위를 양다래, 혹은 참다래로 부른다. 키위는 다른 나라에서 넘어온 개량종이다. 실제 다래는 엄지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크기이다. 맛봐도 된다 얘기해도 크기만 보고 신 걸 어떻게 먹냐며 거절하신다. 하지만 이렇게 똑 떨어질 만큼 말랑하게 익었다는 건 이미 충분히 달콤하다는 뜻이다. 용감한 한 분이 맛보시고는 키위보다 더 달콤하다며 웃으시면 그제야 너도 나도 맛보고 싶어 한다. 자연에서 시간을 들여 익은 열매는 사람손을 타지 않아도 충분히 달콤하다. 난 여전히 키위보다 다래가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