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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Nov 19. 2021

나의 불광 순댓국

순댓국을 처음 먹어본 건 스무 살 때이다.

순대만 시켜서 떡볶이와 함께 먹어보았지만 하얀 국물 안에 순대가 들어있는 순댓국이라는 음식은 지난 20년 동안 맛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열아홉이 끝나갈 무렵에 나의 둘째 고모는 서울 불광동에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

그리하여 나는 포항에서 짐을 싸서 고모집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고모가 연 가게는 "불광 순댓국"


"순댓국 한 번 먹어볼래?"


그렇게 시작된 나의 순댓국에 대한 경험들이 여러 해 동안 쌓였다.

처음엔 순대만 넣고 먹었지만 그 후에는 용기가 생겨서 머리 고기와 함께 섞어 먹기도 했다.

밥을 말아 멀어도 맛있었고 밥과 따로 먹어도 맛있었다.

그야말로 질리도록 먹을 수 있었다.


고모와 나는 큰방 하나와 길쭉하지만 정말 작은 방하나가 있는 순댓국 가게 2층에 월세를 얻어서 함께 살았다.

새벽 4시가 되면 알람이 울리고 고모는 1층 순댓국집으로 출근을 했다.

나는 다시 쿨쿨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으로 순댓국을 먹고는 학교로 향했다.

새벽에 북한산을 오르고 하산하며 순댓국을 먹는 손님들이 많았고 대다수가 단골이 되었다.

나는 종종 학교 수업이 휴강하는 날이거나, 주말에 고모의 일을 도와드렸다.

가게가 바쁜 시간에 고모를 도와 순댓국을 나르고 깍두기를 날랐다.

그러다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내가 유심히 손님들을 관찰한 결과 내가 먹을 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손님들이 아무도 순대를 쌈장에 찍어먹지 않았다.

순댓국을 시켜먹는 사람은 그렇다 쳐도 찰순대만 시켜 먹는 사람들도,


"여기, 쌈장 좀 주세요"


하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놀라고 궁금했다.

아니 순대와 쌈장조합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아무도  먹다니.

손님들이 가고 고모에게 물어보았다.


"고모,  사람들이 왜 순대를 쌈장에 안 찍어먹어?"

"서울 사람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지"

"뭐? 소금에? 쌈장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랬다. 경상도에서 온 나는 어릴 때부터 순대를 쌈장에 찍어먹었다.

경상도에 여행 와서 식당에 가서 순대를 시켜먹으면 쌈장이 같이 나온다.

물론 소금도 함께 나오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순대는 쌈장에 찍어먹었기에, 또 내 주변 대다수의 사람들이 쌈장에 순대를 찍어먹으므로 그게 경상도식인지 몰랐던 것이다.

서울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고모의 순댓국 가게에 데리고 와서 순댓국과 순대를 먹을 때,

친구들은 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너 순대를 왜 쌈짱에 찍어먹니?"


나는 우스웠고 재밌었고 도리어 친구들에게 '쌈장'을 권했다.


"진짜 맛있어. 한 번 찍어먹어 봐!"




나에게는 익숙해서 모든사람들이 그럴거라는 생각을 할때가 자주있다. 나의 기준에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데 자신이 경험한 위주로 생각하며 단정지으며 살아가게되고 그로인해 많이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당시엔 절대 이해할 수 없던 일들도 마흔이 다 되어가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것 같다. 세상의 진리를 얼마나 빨리 깨우치고 알아가게 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자유화의 시기가 결정되어진다. 마흔이 다되어가는 나는 지극히 내 중심적인 사고를 하며 살아왔던 지난 많은 날들에 웃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런시간들이 필요는 한것 같다. 시간의 법칙에 따라 많은 일을 겪어보고 웃고 울었던 지난날들이 오늘의 나로 성장시키니말이다. 이제는 남편과 다투더라도 감정 깊숙히 내려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댁문제도 예전이라면 일주일이상 꽁꽁거랬을텐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는것 같다. 모든것이 내 생각같지 않다는걸 알고 '그럴수도 있겠지'하는 상대방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하는것이다.



그렇게 불광 순댓국집에서 순대와 순댓국을 실컷 먹으며 20대 초반을 보냈다.

한 번씩 포항에 내려갈 때는 아이스박스에 순댓국을 포장해서 내려갔더랬다.

이 맛있는 고모의 순댓국을 가족에게도 소개하고 싶었고, 실제로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잡내가 나지 않고 뽀얀 국물에 찰진 순대와 깍두기를 얹어 후루룩 말아먹는 그 맛.

나는 불광 순댓국만큼 만족하는 순댓국집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비가 와서 쌀쌀함을 느끼는 날 문득 순댓국이 생각나고 불광 순댓국이 그리워진다.

더불어 순댓국 생각이 날 때는 고모가 보고 싶다.

고모가 해주는 그 순댓국을 다시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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