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보다는 더 자주 나의 출신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 물어본다.
"고향이 어디세요?"
나는 경상도 토박이다.
그중에서도 포항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고 현재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고3 수능을 치고 바로 서울로 향한 나는 실용음악학원에서 열성적으로 말을 아꼈다.
그 이유는 내 말씨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암묵적인 속마음에 있었다.
금세 들켜버리고 말 것을 어린 시절 나는 왜 그리 숨기고 싶었을까.
연습실에서 각자 연습을 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누군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기다렸단 듯 한 명 두 명 모여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곤 했다. 한 날에 겨울철이라 흔한 '귤'을 누군가 내게 건넸다.
달콤하게 생긴 귤에게 바로 배신을 당한 내 혀가 감히 방어하지 못한 그 말.
"아, 새 그러"
순간 모두가 눈이 동그랗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각자 몇 초동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머릿속에서 해석을 했을 것이다.
외국어인지 외계어인지 모를 그 말을.
BOBO(강성연)의 노래를 잘하는 삼수하는 언니가 물었다.
"야 그거 도대체 무슨 말이냐?"
"새그럽다 몰라요?"
사전에 있으니 찾아보라 큰소리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날 알았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이 겨울에 귤을 먹을 때 자주 쓰는 새그럽다는 그 말이 사투리임을 말이다. 그 일을 격은 후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아이 셔"를 조금 더 자주 남발하며 지냈다.
사투리의 고비는 한 번 더 나를 찾아왔다. 그 역시 경기권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사투리, 정녕 네가 나의 천적이냐. 나름 노력해 연습하며 고치며 잊고 살았는데 어김없이 또 나를 찾아오다니. 역시 출신은 속이지 못하는 것일까. 학교를 졸업하고 피아노 개인 레슨 일을 할 때다. 당시 나는 유아들에게 피아노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엄마들에게 소문이 나서 수업이 많았다. 한창 신이 나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 시기에 이런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아이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피아노도 재미있게 잘 가르치고 다 좋은데 한 번씩 수업하며 사투리는 쓰는 게 좀.."
아니 수업도 잘하고 아이도 좋아하는데 사투리가 좀 이라니. 그런데 그 말을 무려 서울 토박이 엄마가 한 말이 아니었다. 그 학부모한테 치사함을 느꼈다.
"내 사투리가 어때서! 내가 얼마나 괜찮은 선생님인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에 더해 현재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다른 점은 어린 시절처럼 출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지 않으며 자유롭게 할 말 다 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내 말투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고 미리 걱정을 하지 않는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편하게 말하는 내 말씨에는 정겨움이 있다. 왜 인지 몰라도 그건 표준어로 포장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많은 노력을 기울었지만 내 말씨는 결국 바꾸지 못했고 그렇지만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투리 쓰는 건 자연스럽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당당해지니 사투리로 인해 느끼는 부끄러움, 곤란 한마음, 뭔가 들킬 것 같은 불안함 같은 감정들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은 나 자신이 사투리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으니 모든 것이 해결되어버린 셈이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나를 놀리는 거 아니겠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되려 사투리 쓰는 것이 나의 매력이 될 수 있게 나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을 내뱉기로 한 거다.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사투리가 자연스러운 사람임을 인정하고 당당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내 말씨로 말을 내뱉는 것, 때론 뻔뻔함이 필요했고 부끄러움은 저 멀리 보내야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주위 사람도 함부로 나를 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니 괜찮아졌다. 나에게서 나만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으로 나를 감싸주는 것이다.
이제 곧 12월이다. 달달한 귤을 만나면 기쁘지만, 새그러운 귤을 만나면 나는 웃는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경계가 모호해진 채 나는 오늘도 당당하게 말을 한다.
"귤 먹을 사람?"
내 사투리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