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흐린 날씨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오래전 기억들을 몇 가지 떠올려본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 어떤 추억이 있는지 머릿속을 가만가만 살펴본다. 아름다운 추억이 분명히 많을 텐데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조금 더 파고들어보니, 기억 한구석 아른하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김포 최북단 '시암리'
내가 국민학교(아직 초등학교라고 불리지 않은) 시절, 여름방학 때가 되면 종종 이모 할머님 댁으로 놀러 가고는 했다. 그곳은 김포 최북단에 위치한 '시암리'라는 마을이었다. 이모할머니와 그 가족분들은 늘 농사를 짓고 계셨다. 낮에는 일하러 나가시고 점심이 되면 집으로 오셔서 점심 한 끼 드시고 좀 쉬시다가 다시 일을 하러 나가셨다. 해가 어스름할 때쯤이면 농기구들을 들고서 돌아오시던 기억이 있다.
말 그대로 최북단 시골이었다. 나는 낮과 저녁으로 종종 북한에서 들리는 방송을 듣고는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슨 주민 방송이었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참 신기했다. 말로만 듣던 북한을 꽤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는 두려움보다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강하나 건너면 바로 북한이라는 말에 나도 한번 가볼 수 있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집 뒷산에 올라가면 밤나무가 늘 울창했다. 가시에 찔릴까 신을 신은 채 두발로 조심조심 밤을 까던 기억. 연을 날리고, 밤이 되면 쥐불놀이를 했던 기억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것들을 수십, 수백 번이라도 하고 싶은 그리움이 있다.
추억으로 남은 창고속 나의 첫 성인잡지
그곳에는 나와 같은 또래가 없었다. 3살 위 친형과 함께 가면 둘이 놀러 다녔고, 내가 혼자 갈 때면 나는 혼자 그 시골을 누비고 다녔다. 시골집 창고에는 별의별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그저 잡동사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 하나 기억나는 게 '성인 잡지'였다. 호기심에 어린 마음에 몇 번 들춰보고는 했다. 너무 어렸던 탓인지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여자의 벗은 몸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게 왜 거기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나이가 많았던 노총각 삼촌이 갖다 둔 게 아닌가 싶다. 삼촌은 많이 외로웠을까. 40대 노총각의 외로움과 여자 한번 품어 보지 못했을 법한 외모와 어리숙함이 왜 지금에 와서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는 걸까.
이전에 이 기억을 떠올렸을 때는 그저 남사스러움으로 남아있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그 시절 내가 처음 본 성인잡지는 시골 밤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처럼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