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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Dec 08. 2023

<내친김에, 나의 고3, 나의 대학 1학년>

Unsplash에서 퍼온 사진


1. 나의 고3


어릴 때부터 언니와 나는 엄마로부터 의대에 가라고 들들 볶이면서 자랐다. 언니가 사춘기 때 삐딱선을 제대로 타버리자 그다음 타겟은 내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고 3이 되자마자 엄마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3개월 이상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었고, 조련사를 잃어버린 곰이 되어 공부에서 아예 손을 놓게 되었다.


여름이 되어서야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잃어버린 말과 글을 다시 연습하느라 나에게 신경을 쓸 기력이 없었다. 나는 학교를 다닌 이후로 그 당시에 이렇게나 공부를 안 하는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딱히 밖으로 놀러 다니거나 한 것도 아닌데, 해야 할 걸 안 한다는 게 불안하면서도 좋았다. 그런 나를 보면서 엄마는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때 내가 아프지만 안았어도 SKY는 갔을 텐데..."라는 대사를 대입시험 시즌이 되면 반복하곤 했었다.


공부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요즘 특정 지역의 엄마들처럼, 엄마는 내게 필요한 과외 선생님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섭외해 와서 과외 시간표를 쫙 짜서 쉴 새 없이 공부 스케쥴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엄마 아빠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이었던 나는 이끌어주는 데로 따라가서, 과외비가 아깝지 않은 자식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과외를 받았던 나는 그 부작용이 대학에 가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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