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커피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tlionheart Feb 03. 2024

스승님을 만나다

마지막 센서리 수업


작년에 영어강사라는 직업을 주 5일 수행하면서,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커피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며, 이렇게는 그냥 흐지부지 끝나게 놔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여름방학 직전에 센서리 고급반 수업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다시 한번 몰입의 순간을 기대하면서 조심스럽게 교육장 문을 열자, 반가운 선생님 옆으로 종종 커피 행사 때 마주쳤던 C가 와 있었다. C는 나와 동갑으로 화학을 전공했고, 나처럼 방과후 강사로 학교에서 과학강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C를 마주쳤을 때 A선생님의 수업을 적극 추천했었는데, 이번에 수업을 같이 듣게 된 것이었다.


센서리 수업은 커핑을 통해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작년에는 초중급반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었고, 올해는 고급반을 신청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의도치 않게 나는 자격증 콜렉터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수업날이었던가.. 여러 가지 원두로 커핑을 하면서 수강생 네 명이서 돌아가면서 선생님과 함께 다양한 표현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아도 뿌연 비닐이 위에 덮여있는 것처럼, 선뜻 정확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나와 비교해서 여기저기 커핑 하러 바쁘게 돌아다니는 C는 참 쉽게도 커피맛에 대한 표현을 줄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눈에 힘을 주고, 꾹꾹 한마디 한마디 눌러 야단을 치셨다.


"**씨! 다른 친구들은 커핑 다니면서 실력이 늘고 있는데, **씨는 작년하고 똑같다!"라고.


갑자기 가슴 한가운데가 저려오면서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숨을 참으며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이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나 자신이 바로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 속에서 커피를 배우게 되었는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더 가슴이 메어왔다.


십여 분 남은 시간 동안 울컥거림은 계속되었고,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겨우 운전을 하고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께

수업 들으면서 저도 느끼고 있던 점인데..

고심 끝에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약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


가르치고 배우는데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정곡을 찔려 혼쭐이 나고 나니 정신이 퍼뜩 들기도 했고, 나를 정말 아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승님을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