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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y 23. 2024

마을버스에서


아침에 부지런을 떨며 운동을 갔었다. 유산소 30분 땀 흘리고 나서 필라테스 수업을 들어갔었다. 화, 목 강사님 수업은 유난히 힘이 들지만, 요새 날이 더워지면서 수업 예약이 2주간은 풀 북킹이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내 몸의 모든 근육을 끙끙대며 수축시킨 후 마무리 운동으로 이완을 시켜주고 나니 힘이 한 개도 없었다. 풀려버린 다리로 터덜터덜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앞에 마을버스 두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뛰어갈 수가 없어서 오십 미터쯤 느릿느릿 걸어가는데도 평소 같으면 쏜살같이 출발해야 할 마을버스 두 대가 움직이질 않았다. 맨 앞의 2번 버스에 올라타는데, 운전사와 깡 마르신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 요금으로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버스카드도 현금도 없으신지 지갑이 무척이나 얇아 보였다. 운전기사분은 “천 사백 원인데 천 원만 내시라”라고 했는데, 내가 버스카드를 찍고 할아버지 곁을 지나 뒷자리로 갈 때까지 요금을 못 내시고 결국에는 “그럼 내리시라고 “ 하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가던 길을 뒤돌아 가면서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기사님께 ”제가 대신 낼게요 “ 하면서 요금통에 넣고, 할아버지를 지나쳐 가면서 ”잔돈이 없으신 것 같아서요 “라고 하고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곧 마을버스는 출발을 했고 할아버지도 앞자리에 앉으셨는데, 할아버지는 갑자기 상기된 얼굴과 큰 목소리로 나를 쳐다보며 ”냈는데 안 냈다고 그런다 “라고 말씀하셨다. 많이 민망하신 것 같아서 ”아 그러셨어요? “ 대꾸를 해드리니, 또 같은 말씀을 반복하셔서 나도 같은 대답을 해드렸다. 다행히 운전기사분이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그 깡 마르고 얇디얇은 지갑을 갖고 계셨던 할아버지의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가 자꾸만 생각난다. 우리 아빠 보다 더 연세가 들어 보이셨는데.. 자식들도 형편이 안 좋은 건가 싶으면서도, 그래도 어떻게 버스비가 없이 다니시게 하나 싶고. 오히려 나 때문에 더 창피한 마음만 들게 되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 한가운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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