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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y 26. 2024

제사 그리고 장례식


금요일에 대학 단톡방에 부고장이 올라왔다. 대학교 때 꽤 친했던 남자 동기 어머님의 장례 소식이었다. 그 남사친의 부인은 대학원 일 년 후배였는데, 소규모 정글 같았던 대학원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참 착한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20여 년 전에 타 연구소에서 몇 번 봤었고, 남자 동기는 졸업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대학 CC였고, 둘 다 이 동기 놈과 친했기에 토요일에 조문을 같이 가기로 했다.


토요일은 공교롭게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통합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저녁 6시까지 오라는 아빠의 메세지에 따라 남편은 지인 자제분의 결혼식 참석 후 부모님 집으로 향했고, 딸아이는 강남에서 게임 친구들 모임 후 전철을 타고 왔고, 나는 내 차를 운전해서 가서 세 식구가 따로따로 차례대로 모이게 되었다.

제사를 모시면서 우리밖에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  아빠가 얼마나 속상하실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고였다.




맏아들인 아빠의 동생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포함해서 남동생 세 명에 여동생 두 명이었다. 못난 동생 두 명에 잘난 동생 세 명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막내 고모는 아빠가 의과대학 다니실 때, 여름방학 때 광주 집에 내려와 보니 태어나 있었다고 하셨었다.

할아버지에 관해서 아빠한테 들었던 이야기는 이랬다. 할아버지는 동경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이셨는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술을 많이 드셨고, 담배인삼공사의 전신인 그런 곳에서 일하시다가 나오셨었다고 하셨다. 아마도 그 당시에 우울증이 있으셨던 것 같다고 하셨었다.

어쨌거나 우리 아빠는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다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보내고, 약사 작은 아버지한테는 나 어렸을 때 동대문에 약국까지 차려줬었다.

막내 고모를 시집보낼 때는 연애결혼이었는데도, 시어머니 되는 사람이 아들이 치과의사라고 집 해오라고 하도 시집살이를 시켜서 결국엔 아빠가 집까지 마련해 주셨었다고 한다.

큰 고모는 미국에서 간호사로 평생 일하시다가 은퇴해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시고 계시다.


못난 동생 두 명은 병원이 꽤 잘되던 시절부터 내리막을 걸을 때까지 병원 사무장으로 데리고 있었다. 남편 말에 의하면 동생들이 사무장으로 있을 때, 아마  많이 해 드셨을 거라고 한다. 그 못난 동생들의 자식들 학비도 보태주셨던 것 같았고, 오륙 년 전에 그 한 명이 사고 친 것도 돈으로 막아주셨다. 살 만큼 살고 벌 만큼 버는 약국 작은 아버지가 송사에 휘말렸을 때도 변호사 비용으로 쓰라고 현금 다발을 작은 엄마에게 선뜻 쥐어주셨었다. 그때 그 작은 엄마는 “아이고 큰 아버님~~" 이러면서 돈다발을 쓸어 담았었다.



제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에 큰 아들이라는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사셨던 아빠를 생각하니 울화가 올라왔다. 남편에게 나 아까 제사 지내는데 눈물 날 뻔했다고 하면서, “썅놈의 새끼들. 어떻게 제사를 아빠 혼자 모시게 하냐고.”라고 욕이 저절로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상복으로 갈아입고 @@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7호실 상주인 **는 30년 전과 똑같았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는 표정으로 남편과 포옹하고, 나랑은 어정쩡한 포옹을 했다. 향을 피우고 하얀 국화를 영정 앞에 올려놓고 묵념을 했다. 조문객 응접실로 옮겨 어머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향년은 어떻게 되시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다.


ㅇㅇ암 2기 진단받으시고 수술하셨는데, 4개월 만에 재발해서 병원에서 가시는 길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ㅇㅇ암 무섭더라면서 초기에 발견했는데도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ㅇㅇ암은 우리 딸의 진단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종이컵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게 되었다. 차마 상주한테는 세세한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의 부인이 와서 상주와 바톤 터치를 했다. 자식 얘기를 물어보니 딸아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술이 취한 나는 남편에게 집에 가자고 하고 겨우 신발을 신고 차에 탔다.

차에서 울고 싶었지만 울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 겨우 옷만 갈아입고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이 되었다. 머리가 띵하다.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시고 일요일 아침을 차렸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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