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을 맞닥트리게 되었다. 첨단 mechanical 신문물을 경험하는 장소에서 테이블 한켠에 놓여있는 수동 그라인더. 손잡이와 연결된 옛스러운 장식물은 손잡이를 돌리면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그라인더 날이 돌아가게끔 되어있다. 우리 할머니 세대들이 집안에 한 대씩 두었던 재봉틀이 떠오른다. 패달을 발로 밟아 운동에너지를 만들어 내면서 오른손으로 동그란 조절기?를 돌리면 드르륵 바느질이 되었던 그 재봉틀 말이다.
어릴 때 방학이 되면 기차를 한참이나 타고 가서 어두운 밤길을 아빠 손 꼭 붙잡고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무서워하면서, 시냇물 소리, 벌레 소리들을 들으면서 할머니 댁으로 가곤 했었다. 그 순간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아직도 또렷이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솜씨가 좋은 분이셨다. 음식 솜씨, 옷 만드는 솜씨, 밭일하는 솜씨. 손자, 손녀들에게는 내 강아지라며 함박웃음을 지으셨지만, 아들 못 낳은 전문직 큰아들의 부인인 우리 엄마한테는 참 차가운 분이셨다. 그에 비해 최소 아들 두 명씩은 낳은 작은 엄마들한테는 잘해주다 못해 연세가 꽤 드신 후에는 눈치를 보시는 경우도 있었다.
자랄 때 너무 싫었던, 물론 지금도 싫어하지만, 명절이나 집안 어른들 생신날이 되면 온갖 친척들이 모이게 되고, 부엌에서는 여자 어른들만의 리그가 전개되었다. 물론 왕 중의 왕은 할머니. 그다음에 말발이 서는 사람은 아들 가진 여자들 중에 남편이 돈 잘 버는 집이었다. 딸만 있는 우리 엄마는 할머니 시집살이에 동서들의 시기 어린 말침을 받아내느라 바빴고, 옆에서 음식 만드는 걸 거드느라 부엌을 떠나지 못했던 나는 주눅이 들곤 했었다. 그때는 말 한마디 받아치지 못하는 엄마가 오히려 원망스러웠는데, 결혼해서 살아보니 이백프로 이해가 되었다.
시골집에서 재봉틀 돌리던 할머니 옆에서 낮잠 자던 어린 내 모습부터, 같이 살던 시기에 엄마한테 막말하던 할머니를 들이박았던 대학생 때의 내 모습까지 기억의 파편들이 이어진다.
맥락 없이 드는 생각은 내 딸은 능력자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주변이 어떤 상황이던, 어떤 사람들이 다가오고 떠나가던 자기 자신을 지키게 해주는 건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