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며 그때 죽은 이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꾸미고 있다.
책상 위에 한가득 어지럽게 놓여진 책들을 제 자리로 옮겨주고, 커피로 내리기에는 애매한 원두 봉지들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쳐놓고, 양쪽 끝의 주황빛 불을 켜놓고, 방문을 열어 거실 에어컨 바람이 선풍기 날개를 타고 들어오도록 해 놓았다.
머리를 감은 후 대충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고, 잔잔한 꽃향기가 나는 헤어밤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주말 밤 바에서나 어울릴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의 재즈곡을 틀어놨다.
인간의 뇌가 원시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먹고 마시고 자고 도망가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 기억이 왜곡되고 미화되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소시오패스 사관학교가 있는 것인지 겉으로는 멀쩡한 직업과 외양을 갖추고 있는데도, 일반인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면서 음침한 그림자를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부류가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과의 대화, 눈빛, 그 눈빛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굳이 직관을 동원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도망가! 되도록 멀리!
사람이 얼마나 오만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건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주변에 사람의 껍데기를 쓴, 그럴듯한 자가 있다면 부디 그들이 하는 말의 의도와 행간을 읽어 보길. 그리고 그 눈을 잘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 안에 그들의 영혼이 담겨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