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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오다

by hotlionheart


빛바랜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려 차창에 부딪히고 있었다. 딸아이를 학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그 간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티격태격 하거나 무뚝뚝하게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와 딸아이의 혈액검사 결과 이상으로 한 달 동안 정신이 없었다. 딸아이가 다니던 내과에서는 혈액종양 내과에 가보라는 소견서를 써주었다. 하지만 의료파업으로 인해 다니던 종합병원 두 곳에서는 혈액종양 내과 초진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남편의 검진 결과 모든 수치가 기준치 이상인 데다가, 결과지는 당장이라도 남편이 심장마비로 눈을 못 뜰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리멘탈인 나는 멘붕이 왔고, 예약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면서, 업체 이사님께 상황이 이러하니 대체강사를 구하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강사 4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제대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은 가족을 지켜야 할 때' 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뭔가 하려고 하면 건강상의 문제로 희망이 자꾸 꺾여지니 무릎이 꺾여 휘청거렸다. 나는 안타까움에 두 달 전 혈액검사 결과가 이미 이상이 있었는데도 고지를 해주지 않은 의사 탓을 하면서, 우리 가족이 다니는 할아버지 후배의 내과를 다니지 않고 딸이 마음대로 다른 내과를 혼자 다니겠다고 고집부렸던 탓을 했다. 혼자 감정을 삭이고 있던 딸아이는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고” 하면서 폭발하여 나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서로 감정이 좀 가라앉은 후에 딸아이 방에 들어가 보니 베갯잇에 눈물 자국이 흥건했다.


병원이 다행히 예약되었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나는 밤마다 최악의 상황이 올까 봐 자다 깨서 혼자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그럴 때면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히면서 수술받았던 당시의 기억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번 주 화요일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철분 수치가 낮아지니 혈소판 수치가 증가하게 되었고, 예전 수술로 제거된 비장이 혈소판 수치를 낮춰주지 못해서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혈소판 수치는 여전히 기준치 이상이지만 한 달 전보다는 낮아져 있었고, 혈전과 같은 합병증이 생길 만한 상황은 아니기에 삼 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하러 오라고 했다.


남편도 건강 검진받은 병원의 심장 전문의를 만나서 상담을 한 결과 스텐트 시술은 안 받아도 되지만, 당장 금연과 금주를 실행하고 살을 표준 체중 범위까지 빼라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이라고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아찔했었다.


한시름 놓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식욕도 되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식욕으로 말이다. 삼일 사이에 이중턱이 다시 생기고 허리가 투실투실 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퉁퉁해졌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롭다.


다시 한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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