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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Aug 26. 2023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라네>

미국 동부에 사는 일 년 후배의 생일이라고 여자 동기들과 일 년 후배들 단톡방에서 생일축하 메세지를 주고받느라 잠시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과 이름에 “공”자가 들어가서 우리 학번에는 여학생이 다섯 명, 바로 아래 학번에는 여학생이 여덟 명쯤 되었던 것 같다.


남학생들이 득실득실하던 과에서 눈에 띄게 총명하면서도 씩씩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던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못된 직속 남자 선배의 끈질긴 괴롭힘으로 휴학을 했다가, 그 선배가 졸업을 한 후에 복학해서 졸업을 할 수가 있었다. 그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따고 오랜 시간 연락이 끊어졌었다.


몇 년 전에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다시 만나면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명함에 박힌 그럴듯해 보이는 교수라는 직함 뒤에 미국에서 동양인 여자로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라서 가능했던 삶이었다고 밖에 생각이 안들었었다.


나처럼 작은 체구에 이제는 나잇살이 붙어서 통통해졌지만,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눈빛은 여전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 눈으로 보는 그녀의 현실 속 모습과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망막을 통과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녀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의 그녀는 금테 안경을 쓰고, 호리호리한 몸으로 캠퍼스를 누비며, 호기심 많은 이십 대의 모습인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항상.

이런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착시? 착각? 투사? 잔상? 갈수록 이상해진다.


**아 생일 축하해.

너의 나이가 믿기진 않지만

내 기억에 넌 영원한 20대의 모습이다.

사랑한다.


이렇게 단톡방에 올려놓고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린다.


내가 쓰고 내가 눈물 찔끔하는 이 갱년기의 주체할 수 없는 주책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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