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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n 02. 2023

<우리 동네>


1. 계절의 기쁨


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단지는 1기 신도시로 지어져서 벌써 서른 살이 다 되어간다. 그 나이만큼이나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도 키가 크고 잎이 풍성하다. 지금 시기부터 여름 까지는 양쪽 길가의 나뭇잎들이 손을 마주 잡듯이 뒤엉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눈부신 태양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산 입구까지 약간의 오르막 경사가 진 길은 이따금씩 산바람이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한여름의 땀방울을 시켜주곤 한다.


가을은 또 어떠한가. 알록달록한 단풍잎들과 노란색 은행잎들이 이 계절의 초입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분주하게 만들고, 막바지에는 갈색 낙엽이 되어 길 전체를 뒤덮어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든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서 축축하게 젖은 푹신푹신한 낙엽을 밟는 것도 재미지다.



2. 자연이 나에게 준 것


오늘은 철쭉축제가 막바지인 주말이라 단지 옆 꽃동산에 놀러 온 타 지역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산책길에서도 평소에 느껴지던 평온함 대신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낯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나를 조금은 긴장시켰다.


나는 서른 살까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시티 걸”이었는데, 여기로 이사 와서 살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물론 출산과 육아라는 큰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얼굴을 보면 특유의 느낌이 있다. 앞서 나가려 하지 않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듯한 여유가 표정에서 묻어난다.

오랫동안 여기서 계절을 보내면서 꽃과 나무, 풀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느끼게 해주는 감탄과 감동을 통해 메말랐던 나는 감수성이 풍부해졌다.

계절마다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산책로를 혼자서 조용히 걸으면서, 또 여럿이서 도란도란 일상을 나누며 걸으면서,

나는 빚은 술처럼 숙성되어 갔다.


내가 나를 들여다봤을 때 이십 대의 세련되고 화려한 소비중심적인 아가씨도 괜찮았지만, 그때보다 훨씬 깊이 있고 수용적이며 역지사지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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