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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Sep 17. 2019

하루하루

걸음이 느린 그대에게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폭풍성장을 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나보다 키가 작았는데 지금은 내 키를 훌쩍 넘었으니 말 그대로 ‘폭풍성장’이다. 


키카 크는 게 눈에 보인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한 달에 1cm는 크는 것 같은 우리 집 2호는 ‘찌찌 만들기’ 클럽에 가입했다고 한다. 찌찌 만들기 클럽이란 한마디로 가슴 근육 만들기가 목표인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예전에는 없던 클럽이 생긴 걸 보면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가 많이 달라진 게 확실하다. 

 남자로 태어나긴 했지만 시기적으로 진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울퉁불퉁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는 남자아이들이 꿈꾸는 또 다른 남자의 모습쯤 되는 걸까? 아무튼 주기적으로 모여서 근육을 키우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뭐 그런 근육을 키우는 헬스 동작을 하는 것 같은데, 가끔씩 훈련의 결과를 확인이라고 받고 싶은 듯 소매를 걷어붙이고 내게 물어본다.     


“엄마! 이거 봐요. 근육 보이죠? 커진거 보이죠?”

“어머! 진짜~!! 단단해! 어머어머 벗어봐! 제대로 좀 보자!”     


멋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자를 지켜보던 1호가 거든다.

“엄마! 하지 마요. 엄마가 자꾸 거드니까 애가 더 하잖아요!”

“어머 얘! 진짜 근육이 커졌다니까. 만져봐. 단단해!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했겠니?”


웃통을 벗고 온 아들 녀석의 찌찌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며 리액션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엄마는 그 순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진수를 보여준다. 반응을 보일 때는 언어 반응과 행동반응을 함께 보여야 하고 부정적 리액션이 아닌 긍정적 리액션을 보여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 멋있다고 하지 않고, 열심히 눈으로 봐주고 손으로 만져주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고, 하나마나 별것 아니라는 부정의 표현이 아닌, '엄지 척'해주는 긍정이 빛나는 순간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반응을 표현했을 뿐이다.      

우리 집의 이런 ‘쇼쇼쇼’는 예고 없이 펼쳐졌고, 그때마다 나는 최고의 방청객이 된다. 돈도 안 주는데 말이다. 


하루는 엎드려 푸시업 동작을 하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게 내려가는 건 되거든요? 그리고 내려가서 버티는 것도 돼요. 근데 올리는 게 정말 안돼요.”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내려가서 버틸 때 쓰는 근육 하고 올라갈 때 쓰는 근육이 달라서 그런 거야. 버티는 근육은 발달해 있지만, 올리려면 다른 근육의 힘이 더 필요한데 아직 그 힘이 부족한 거지. 그런데 버티는 힘도 엄청난 거니까 자꾸 연습하다 보면 올리는 동작도 할 수 있을 거야.”

헬스 트레이너도 아닌데 전문가인척 줄줄 말은 잘한다. 아이는 그 말을 알아 들었을까?

말을 해놓고 내 안에 방금 전 했던 말이 메아리친다. 나는 어떤 근육이 발달했고 어떤 근육의 힘이 부족한 걸까... 

‘버티기... 내가 그거 좀 잘하지...’ 

힘든 순간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버티다 보면 해결되는 일들이 있다. 잘 버티기만 해도 이기는 거다. 팔씨름을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힘이 솟아서 상대방을 제압하면 금세 게임이 끝나버리지만 힘이 비등할 때에는 잘 버티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있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항암을 할 때도 그랬고,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할 때도 그랬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두면 결승점에 도달할 수가 없다. 승패는 순위에 있지 않고, 결승점에 도착했느냐 아니냐에 있다. 기어들어 갔어도 목표한 지점까지 갔다면 실패가 아니다.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나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아니다. 목표 하나를 높이 설정해놓고 꼭 해내고 마는 그런 유형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좀 게으른 편이라고 생각을 한다.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것이지, 미리 한다거나 서두르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다. 


 나는 행동이 느린 아이였다. 어린 시절 만화책을 읽어도 친구들이 한 권을 읽을 사이에 나는 반권밖에 읽지 못했고, 친구들은 한 시간 만에 해내는 숙제를 나는 한 시간 반 혹은 두 시간이 걸리고는 했다. 사실 이건 게으름과는 상관이 없고 느린 것일 뿐인데, 시작은 같이 했어도 마침표를 늦게 찍으니 내 삶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면 될 텐데... 그렇지는 않으니 나는 그냥 조금 느리고 게으른 시간을 살기로 했다. 

어릴 적 엄마가 하시던 말씀도 꼬리표가 되었다. “손가락이 길면 게으르다는데... 우리 애들은 다 손가락이 길어서...”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시는 부모님들은 일요일에 늘어지게 자는 아이들을 용서하지 못했고, 일요일에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아버지는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살 거냐며 호통을 치며 우리 형제를 깨우셨다. 그러니 나는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며 자랐고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할 일을 정해놓고 기한을 넘기지 않으려는 게 나와의 약속이긴 하다. 게으르지만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해내고,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마무리 짓기를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게으르다고 하면 친구들이 펄쩍 뛴다. "너처럼 부지런히 다니는 애가 게으르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쩌냐?"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나를 보면 활어회가 생각난다는 친구는 무슨 말이냐는 나의 질문에 ‘팔딱팔딱 뛰는 생동감이 느껴진다.’는 말로 대답해 주었다. 에너지가 밝아서 그리 보이나 보다.  내가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내가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찾아 나서는 것이지 부지런해서가 아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그의 저서에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는데 요즘 세상이야말로 세상은 넓고 배울 일도 많으며, 알아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들을 음악도  너무너무 많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성장이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매일같이 노화가 될 테지만, 삶의 지혜는 차곡차곡 쌓여 더 지혜로워야 하고 오늘이 어제보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느린 몸이지만 굴려야 하고 명석하지 않은 머리지만 생각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 삶을 조금씩 낫게 하고 풍요롭게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육을 쓰면 강해진다. 몸의 근육도 그렇고 마음의 근육도 그렇다. 한번 호되게 고비를 맞고 나면 단단한 근육이 생겨 웬만한 자극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단거리 선수와 장거리 선수의 차이는 근육과 심폐기능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단거리 선수가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장거리 선수는 지구력이 관건 아니겠는가. 먼저 치고 나가지 못해도 나와의 싸움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 나를 지켜봐 주는 것, 토닥이며 살아가는 인생길에 끝까지 내 손을 잡아주고 함께 할 사람은 바로 내 안에 있으니까 말이다.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귓가에 매일같이 속삭여줄 수 있는 사람, 기상시간에 관계없이 같은 시간 눈뜨며 오늘도 좋은 하루라고 말해줄 사람. 세상 끝의 어느 날 정신줄이 말짱하다면 ‘그래, 잘 살았어. 기특하다.’라고 말해줄 이도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멘털 갑으로 중무장하고 버티는 수밖에 다른 선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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