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제자리걸음 같은 그대에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악기가 되었든 타악기가 되었든 원하는 대로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 부러운 일이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지만 잠깐이었고 악보를 따라 더듬더듬 건반을 찾아가는 정도의 실력이다 보니 늘 아쉬움이 있었다. 개인 레슨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연습이 필수인데 늘 연습 없이 레슨만 하다 보니 영 실력이 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 배워서 습득력이 아이들 같지 않은가 싶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절대적인 연습량의 부족이다 싶었다.
그래서 목표를 바꾸었다. 한 두곡이라도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곡을 몇 곡 골라서 죽어라 연습해 봤는데 이 악보라는 것이 생각처럼 외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 머리가 나쁜가’ 자책도 여러 번. ‘악보 없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뭐지? 천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일단 치고 또 쳤다. 연습을 하다가 눈을 감고도 쳐보고 책을 덮고도 쳐보고... 하지만 몇 마디 가다가 틀리리가 일쑤여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만의 룰을 정해서 매일 10분이라도 꾸준히 연습하기로 했다. 그러다 20분 30분 조금씩 시간을 늘려갔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마침 작곡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물어봤다.
“내가 요즘 피아노를 연습 중인데 왜 그렇게 안 외워지니? 그런데 자꾸만 쳤더니 어느 순간 악보를 안 봤는데도 손이 움직이는 거 있지?”
“그걸 머슬 메모리라고 해.”
“머슬 메모리?”
“응,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고 근육이 기억하는 거지.”
그런 거였다. 절대적인 연습량이 있으면 몸이 먼저 기억하는 거였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십상이지만, 자전거 타기처럼 몸으로 기억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몸이 기억하는 걸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어릴 때 자전거 타기를 배웠던 사람들은 십수 년 동안 안 타다가 다시 타게 됐을 때 몸이 반사적으로 익숙하게 적응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일종의 그런 원리 일까.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 되곤 하지만 결국 반복이 유일한 열쇠인 건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이는 원리는 하고 또 하고 오로지 반복의 힘. 물리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면 어쩌겠는가 하고 또 할 수밖에.
한 번은 어떤 모임에 나갔다가 손으로 하는 유희를 배웠는데 쉬워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하려고 하니 영 어색하고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주먹을 쥐었다 펴고 손을 모았다가 펴고 하는 동작이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딸아이가 보여주며 따라 해 보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동작이었는데 그때에도 두어 번 하다가 너무 어렵다며 포기한 동작이었다. 나이가 들면 손과 눈의 협응력이 떨어져서 몸이 마음 같지 않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꼴인가 보다 싶어서 또 쉽게 포기하고 싶었지만 너무 멋있게 동작을 소화하는 선생님 덕분에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나보다 열 살이나 더 많아 보이셨으니 나이 탓을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침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어려운 게 아니고 낯선 것 일뿐이에요.”
익숙하지 않아서 낯선 것을 우리는 어렵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아.. 머리가 열리는 한마디. 짧은 순간 집중해서 요즘 말로 겁나 연습을 했다. 하나.. 둘.. 셋.. 넷. 모으고, 펴고, 벌리고, 모으고, 모으고, 펴고, 벌리고, 모으고... 낯설었던 것이 익숙함이 되도록 손을 요리조리 접었다 폈다. 사실은 굉장히 단순한 동작이었는데 처음이라 어렵게 느껴졌던 것은 몇 번의 집중적인 연습으로 내 것이 되었다. 아.... 학습의 효과, 반복의 결과, 연습의 보람.
이제 어디 가도 자랑할 만큼 익숙한 것이 되었다. 이게 뭐라고.
배운 것은 하나다.
반복하다 보면 된다는 것. 안 되는 게 아니라 되기 전에 그만둔 것이라는 것.
너무 쉽게 포기하고 되기 전에 좌절했다.
몇 년 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적이 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휴대전화 액정 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와 손이 따로 놀아 그만 균형을 읽고 넘어진 것이었다. 슬쩍 까지고 크게 다친데 없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오른손 넷째 손가락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수상하다 싶어서 병원에 갔더니 당첨! 골절이다.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나니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자동차 시동도 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젓가락질은 불가능하여 포크로 밥을 먹는데 영 모양새가 빠져서 사람들하고 밥을 먹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결핍은 필요를 부른다. 궁리 끝에 해답을 찾았다.
‘왼손으로 해볼까? 왼손잡이도 있잖아!’
그날부터 나의 왼손 생활을 시작됐다. 양치와 세수는 이미 왼손으로 하고 있었지만 젓가락질은 엄두도 못 냈었는데 도전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숟가락질은 쉬웠지만 젓가락질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반복해서 하다 보니 콩자반을 들어 올리는 수준이 되었다. 별것 아닌 도전에 행복했다. 왜냐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세상엔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낯선 것일 뿐인 일이 수두룩하다. 도전하거나 도전하지 않거나, 시도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낯선 곳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서성이고 있는 게 아닐까?
BGM_Just the way you are _Bruno m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