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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Jul 01. 2019

작품 하나

나만의 인생 명작이 필요한 그대에게

내게는 옷 만들기가 취미인 친구가 있다. 같은 암을 경험한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언니인데, 나는 동병상련 암 파트너를 암 친구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녀는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고 취미 삼아 테디베어 만드는 일로 손바느질을 시작하더니 결국 미싱을 집에 들였다. 거실 한편에 미싱과 마네킹이 있고, 수납장 한편에는 차곡차곡 옷감이 쌓여갔다. 나를 위해 만들었다며 내게 옷을 선물하기도 했고, 맞춤 제작한 옷이 아담한 그녀의 키에는 너무 긴 것 같다며 억지스레 뺏어 오기도 했다. 손수 만든 옷을 입었다가 벗기를 반복하는 모델놀이는 우리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그녀는 항암을 하면서부터 옷 만들기를 멀리해야만 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일상이 버거워지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게 환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인데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나 다시 옷 만들고 싶어...”

“그러게... 언니가 만든 옷 나도 또 입고 싶은데...”     


유방암은 수술 후 5년 동안 완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다른 암들도 그럴 것이다. 5년이라는 고비를 잘 넘기고 의사에게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매일 같이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체크를 해야 하는데, 그녀는 수술 후 1년 정기검진을 앞두고 재발이라는 잔인한 선고를 받았다.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암세포가 뼈로 전이되어 어깨와 골반 허리로 퍼져 뼈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허리가 자꾸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가던 중 그녀는 길 위에서 쓰러졌다. 걸을 수가 없었다. 허리뼈가 무너진 것이다. 앰뷸런스로 병원으로 실려 간 그녀가 결국 척추 뼈에 핀을 박는 수술을 하고 오랜 시간 병원 생활을 해야만 했다. 허리뿐 아니라 어깨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머리도 한 손으로 감아야 했고 멀리 있는 반찬에는 손도 뻗지를 못했으니 미싱을 돌리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우리 언니 옷 진짜 잘 만드는데!”

“그렇지? 내가 진작 옷을 만들었으면 우리나라 패션업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야.”

“암만~!!! 앙드레김의 뒤를 이었을 거야!”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서 우리는 한참을 까륵까륵 웃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마주 보고 웃어주고 손잡아 주는 일뿐이었다. 그녀를 대신해 내가 옷을 만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우리는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냐고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인생이 얼마만큼 닮은꼴이었던 우리는 칼자국을 남긴 가슴도, 제각각 걸어온 시간들도 친자매 얼굴 닮는 것만큼이나 비슷했다. 단지 그녀는 이미 재발이라는 이름표를 받았고, 나는 그렇지 않으니 혹시라도 어설픈 위로로 그녀를 마음 상하게 할까 봐 조심스러운 뿐이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갖고 있던 옷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버린 옷의 대부분은 기성복이었단다. 아무리 비싸게 산 옷이어도 버릴 때 미련 없이 버리게 되고, 반대로 여전히 갖고 있는 옷은 본인이 직접 만든 옷이라고 했다. 원단시장을 가고 재단을 하고 미싱을 돌려서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홈메이드! 자체 제작했던 ‘작품’, ‘나만의 작품’ 말이다. 

애정 가득한 작품!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이 하던 대사처럼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만든’ 정성스러운 그 무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 분명하다.      


라디오 DJ를 하던 시절, 방송하는 매일이 즐거웠지만 오프닝의 압박은 언제나 돌덩이였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멘트는 매일 진행자가 내미는 손 같은 것이다. 시보와 함께 흐르는 귀에 익숙한 시그널, 그리고 매일 달라지는 주제는 청취자가 공감할만한 소재가 좋다. 계절 이야기도 해보고 책에서 이런저런 소재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결국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깨달음으로 직접 적어나갔던 나만의 이야기가 큰 반응을 얻곤 했다. 나의 작품이 빛을 보던 순간이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뛰어난 작가가 아니어도 나만의 글을 써낼 수가 있다. 그렇게 빚어낸 작품이 김춘수의 꽃에 있는 표현처럼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이 되길 바란다. 하나하나 진주알을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 당장 반짝거리며 빛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 내 것으로 남을 나만의 세상 유일한 작품이 될 글쓰기가 기특한 이유이다. 


작품 만들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나의 친구. 그녀는 아직도 항암 중이다. 미싱은 집안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버렸다. 집안 한편에 늘 자리 잡은 미싱을 볼 때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기적처럼 그녀의 건강이 좋아져 새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그녀가 완성작을 들고 보여줄 때마다 내게 짓던 더없이 환한 미소가 다시 한번 보고 싶기 때문이다. 


BGM_no woman no cry_Connie L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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