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희 Oct 05. 2019

낯선 사람들

이웃이 불편한 그대에게

어둠이 내려앉은 늦은 저녁, 집 앞 복도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옆집 아저씨다.     


 이사온지 2년째. 그분의 직업이 택시기사인걸 알고 있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말을 걸었다.     

“저녁 드시고 다시 일 나가시나 봐요? 이 시간에 나가려면 나가기 싫으시겠어요.

“하던 거라 괜찮아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그런 것 같았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나란히 좁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옆집 아저씨가 묻는다. 

“그 집 아저씨가 도통 안 보여요. 한 번도 못 봤어요.”

“앞으로도 못 보실 거예요.”

나는 얼굴에 미소 띠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몇 초나 됐을까... 아주 잠시 어색함이 흐르는 사이. 

나는 한참 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을 상기했다. 


아저씨는 내게 비슷한 질문을 했었고, 나는 불편한 생각이 떠올랐던 만큼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은 거야? 뭘 그렇게 알려고 하지? 경우가 없어.’ 했던 내 안의 온갖 불평들이 떠올랐다. 그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혹은 아파트 앞을 오가며 아저씨를 만나게 될 때마다, 혹여 또 그런 말을 물을까 싶은 마음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사실이다. 

혼자 사는 여자로 낙인찍히는 게 무척이나 싫었나 보다.      

아저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벌이가... 되세요? 남자도 힘든데...”

“그래서 엄청 열심히 벌러 다녀요.”

나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담고 있었다.      

불편했던 그와 나의 이야기 소재가 결국 드러났다. 애들 아빠가 죽었는지, 이혼인지 더 이상 묻지 않은 것은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로 느꼈다. 그리고 참견을 걱정으로 들으니 고마웠다. 


더 긴 얘기를 하기에 엘리베이터는 빨랐고 금세 1층에 도착했다. 나는 야간 운행을 위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아저씨에게 안전 운전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걸음을 옮겼다.

1년이 넘도록 피하다시피 했던 순간들, 같은 질문을 받게 될까 봐 집으로 오가는 길에 아저씨를 마주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그 질문을 맥주에 땅콩 먹듯, 부부의 저녁밥상에서 오가는 대화 소재가 되지는 않았을까... 아주머니는 뭐라고 대꾸했을까, 두 분의 입방아에 우리 집이 소재가 되는 것이 영 불편한 일임은 분명했고,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분명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많이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은 여전히 한부모 가족임을 밝히는 것을 거리끼는 분위기다. 개인의 성향 차이가 있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만 봐도 그렇고 나 역시 그랬다. 

이혼이 더 이상 남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연사 두 주먹 불끈 쥐고 소리 내어 외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한부모 가정이나 미혼모 가정이 결손가정이 아닌 가족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것. 이런 소망이 나의 개인적 경험이 주는 욕심이 아니길 바란다.      


얼마 전 막내딸이 드라마를 보길래 옆에서 같이 보게 되었다. 공항을 배경으로 젊은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여우 각시 별’이라는 드라마였는데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시선만으로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도 줄 타는 곡예사 앤이 피부색이 다른 연인 필립에게 같은 말을 한다. “당신은 그런 시선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을 테니 몰라요.”     

그렇다. 우리는 남다르게 보는 시선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무심코 바라본 시선이 무언의 말이 되고, 무언의 말이 칼이 되는 세상.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배려는 나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꺼려왔던 이웃집 아저씨와의 소재를 거침없이(?) 적당한 수준에서 드러냈으니, 비밀을 하나 공개한 결과로 우리는 1cm만큼 가까워졌을까? 아니다. 내가 더 이상 같은 이유로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 족하다.      


이전 04화 거위의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