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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Jul 26. 2019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몸이 마음 같지 않은 그대에게

아이들이 어릴 적엔 우르르 몰려가 같은 영화를 보는 게 가능했다. 애니메이션이 그랬고 아바타 같은 SF도 그랬고,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아무 말 없이 따라가던 아이들은 조금씩 커가면서 각자 따로국밥이 되어갔다. 사춘기 아이들의 취향을 통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서운하다기보다는 편하다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막둥이가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며 보러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친구가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더라며 자기도 엄마와 꼭 같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는 너무 간절해 보였다. 그래서 다음날 조조를 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나 모르는 사이 언니 오빠들하고 이미 본 영화였다. 이미 보고도 한 번 더 볼만큼 재미가 있다는 건 친구 얘기가 아닌 자신의 얘기였던 것이다.

개봉한 지 며칠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던 영화였는데, 어린것이 얼마나 더 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아이를 불러 놓고 얘기를 했다.


“너 그 영화 며칠 전 할머니네 집에 갔을 때 봤다며, 근데 왜 안 본 것처럼 말했어? 봤다고 하면 엄마가 안 본다고 할까 봐 그랬어?”

“네...” 

아이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럴 땐 그렇게 둘러대는 게 아니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 너는 둘러댄다고 한 거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거짓말로 보이거든. 너무 재밌어서 엄마랑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안 된다고 하겠어? 내일 조조 시간 알아보자. 근데 그게 그렇게 재밌어?”

“네!! 진짜 진짜 웃겨요!!!”

아이는 생기를 되찾았다.     



나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영화를 예매하러 극장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영화 포스터가 영 입맛에 안 맞았다. 나의 영화 취향은 지독히도 내 멋대로여서, 포스터가 맘에 들거나 예고편이 끌리면 무턱대고 보곤 하는데, 주로 로맨틱이나 휴먼 종류가 주종을 이룬다. 한마디로 어벤저스나 좀비 영화 같은 건 아무리 스케일이 있고 관객 수가 최고점을 찍어도 내겐 남의 집 이야기인 것이다. 한마디로 노잼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따스한 영화가 좋은걸 어쩌랴.

마침 바쁜 일정으로 영화를 안 본 지도 한참 전이었던 나는 영화가 그립긴 했지만, 웃는 영화를 보면서 깔깔깔 신나게 즐길 기분은 아니었다. 마침 딸아이가 보자고 콕 집은 영화는 딱 보기에도 유치할 것 같았고 그날 개봉 첫날을 맞은 다른 영화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예고편을 보니 피겨스케이트를 다룬 러시아 영화였는데, 제대로 취향저격이었다. 딸아이도 좋아할 것 같아서 아이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막둥이와 약속을 해놓고 영화를 바꿔서 보는 게 마음에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영 맘에 내키지 않는 영화를 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게 낫겠다 싶어 막둥이 꼬시기 작전에 들어갔다. 어차피 그녀는 이미 본 영화였으니 한 번 더 안 봐도 큰 문제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딸에게 팝콘 세트를 약속하며 나는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쟁취했다. 영화는 예상대로 내 취향이었다. 보는 내내 행복했고 보고 나서도 잔잔한 그런 영화였다. 예쁜 의상을 입고 얼음 위에서 피겨를 하는 모습이며 도전하고 성공하는 스토리에 사랑이야기까지 겨울왕국에 홀릭됐던 막내딸도 좋아할 것 같았다. 영화 상영 중 몇 번 흘깃 아이를 살펴보았더니 흥미롭게 보는 것 같았고, 내심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미안함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2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영화관의 조명이 밝아졌다. 자리에서 일어서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나 피겨 안 좋아해요.”

“뭐? 진짜?”

“유치원에서 피겨 배울 때 너무 힘들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피겨 안 좋아해요!”     

세상에나...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가까이 피겨가 나왔는데... 그 시간 내내 싫었단 말인가? 낭패다... 상상도 못 했다. 

아이는 유치원을 다닐 때 특별활동시간에 피겨를 배웠더랬다. 김연아 같은 피겨선수를 꿈꿨던 건 아니지만 하나 둘하나 둘 엉덩이를 쏙 빼고 배우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아이가 피겨를 당연히 재미있게 배우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내 욕심만 차린 엄마의 옹졸한 선택이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가 싶어 가슴 깊이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냥 아이가 보자는 것 볼걸... 후회가 되었다. 나야말로 원하는 영화는 혼자 보면 될 일이었다. 데이트한다는 핑계로 겉포장이야 그럴싸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그날 하루 종일 미안했다. 미안하다 못해 죄스러워서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고 데이트를 하는 척만 했지 내 욕심만 부린 꼴이 되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내 마음은 말뿐인 허상이었다.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너의 이야기를 듣겠다던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못된 엄마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디 그 날 뿐이었으랴. 공수표를 날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다. 엄마랑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던 아이의 소원도, 엄마랑 쇼핑을 하고 싶다는 아이의 버킷리스트도 스케줄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가 일쑤다. 큰아이 떼는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벗고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를 들어줬었는데, 아이가 하나 둘 늘면서 온전히 나를 비우고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잠깐만 엄마 이것 좀 하고”, “엄마가 지금 바빠서”, “미안한데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까?”

이런 말들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아이는 바쁜 엄마에게 익숙해졌고 “엄마, 내일 시간 돼요?”, “주말에는 시간 낼 수 있어요?”, “엄마랑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라며 가끔씩 내미는 손조차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만 아이와의 약속을 미뤘다. 아이는 아직 엄마가 필요한데 조금 컸다는 이유로 이쯤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같이 하자고 해놓고 내 맘대로 하고, 내 잣대로 자르고 결정하는 일이 잦았다. 


더 미안해지기 전에 아이를 보듬어야겠다. 아이가 원하는 말이 입술이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것임을 늘 기억하고 아이가 온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허울뿐인 약속이나 말뿐인 공감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가 상대에게 향하듯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겠다.      

공감이 중요하다고 강의할 때 그렇게 강조를 했던 내가 실상은 뻔지르르 말만 앞세운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깊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고 막둥이와 다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몇 주 지나자 같은 영화가 인터넷 티브이로 나온 것이다. 따끈따끈한 신작이라 제법 비쌌지만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던 걸 생각하면 결제버튼을 누르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주 호탕하게 거금 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우리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코믹 요소를 곳곳에 배치한 것은 알았지만 거친 대사와 매끄럽지 않은 흐름이 주는 거부감은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웠고 주말 늦은 밤 몰려오는 피곤은 내려오는 눈꺼풀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미 내 눈이 반은 감겼다가 뜨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소파에 눕다시피 해서 보기 시작한 영화는 결국 수면제가 되었고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보던 영화가 끝나고 광고가 흐르고 있었고, 막둥이도 애벌레마냥 웅크린 채로 소파 위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가 따지듯이 묻는다. 

“엄마 어제 영화 보다가 또 잤죠?”     

또... 자버렸다. 그래 나는 상습범이다.

“엄마는 나랑 영화를 보면서 끝까지 본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맞죠?”

거의 수사반장 취조 수준이다. 

“그건 아니고, 밤에 보니까 그렇지... 피곤해서 그렇다고 엄마가... 미안해.”

된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차피 욕먹을 거 한 번만 먹고 말걸. 만회한답시고 자책골을 넣은 꼴이 되었다. 에잇. 공감놀이는 너무 어렵다. 


BGM_Three_Lily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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