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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Jun 12. 2019

마음아 부탁해

위로가 필요한 그대에게

벌써 2년이 흘렀다. 내가 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나의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얼마나 속상해하실까 걱정이 되었다. 동시에 나의 세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그 또한 걱정이 되었다. 초 4, 초6, 고1이었던 아이들... 한창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었기에 나의 염려는 엄마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밥을 해주지 못하고 보살피지 못하는 미안함과 함께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진단이 나오기 전,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살펴본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데도 자꾸만 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상의를 벗고 가슴을 살펴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내방으로 들어왔다. 이불로 가슴을 덮고 빈 어깨만 드러내고 누워있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지금 뭐해요?”

“어... 자가 검진하는 중이야. 사실은 엄마가 병원에 가서 오늘 유방암 검사를 하고 왔는데,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거든. 일주일 기다려야 알 수 있어,”

“만약에 암이면 죽어요?”

“아니, 죽지는 않아.”

“그럼 됐어요.”     

어찌나 쿨한지. 멋진 내 새끼들.

그날 밤, 우리 아이들은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동영상을 찍었다. 덕분에 그때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금도 볼 수가 있으니 선견지명이 있었던 아이들의 행동에 고마워해야겠다.   

   



수술 후 2주나 병원에 있어야 하는 처지여서 아이들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마침 미국에 있는 새언니가 아이들을 보내라고 해서 넙죽 아이들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편하게 수술을 마치고 몸조리를 할 수가 있었다. 봄을 맞아 엄마 아빠께서 아들 며느리네 방문할 계획이 잡혀있었는데, 엄마는 내 곁을 지키겠노라고 여행을 포기하셨고, 엄마 대신 내 아이들이 가게 된 것이다. 걱정 말고 보내라던 새언니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 집에도 아이가 셋인데 내 아이들까지 보냈으니 매일이 전쟁통일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심이 되었던 것은 엄마의 아픈 모습을 아이들이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큰아이는 혼자 집에 남아서 학교를 홀로 다녔는데,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미안해서 따로 병문안을 오라고 시키지는 않았다. 엄마는 새끼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가 너무 싫었다. 아이들이 속상할 일은 차단해 주고 싶었던 게 내 마음이었다.      

가장 아픈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머리가 빠지고 눈썹이 빠지는 흉한 모습은 아이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낯선 모습에도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나의 생활은 정상궤도에 올랐다. 일도 하기 시작했고, 아이들 밥도 내손으로 해먹이고, 내가 보기에도 낯선 쇼트커트의 헤어스타일만 빼면 모든 것이 괜찮았다. 하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외부의 활동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나는 쉽게 지쳤고, 관절이 삐거덕거렸다. 한마디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다. 주변에서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예전처럼 하면 안 돼.”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한 해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가장인 나는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이 감사였다.      

그런데, 그런 감사는 간사했다. 아이들이 내 걱정을 할까 봐 속상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지친 몸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신경도 쓰지 않는 무심한 아이들이 서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놓고 내 걱정을 좀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일이 끝나고 들어와도 다녀오셨냐는 말 한마디 없이 방구석에 있는 아이들이 원망스러웠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나가야 하는 엄마는 나 몰라라 하는 아이들의 행동이 철없어 보였다.

사실은 철없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고작 10대가 뭘 알랴...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모르는 것 같았다. 아파도 괜찮다고만 했지 미칠 지경이라고는 하지 않았던 내 탓이었을까. 아이들에게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너희들이 엄마 걱정도 좀 해주고 그랬으면 좋겠어.”


아이들은 멀뚱멀뚱 눈동자만 굴린다. 낯설다는 표정이다.      

아이들이 걱정하고 속상할까 봐 노심초사하던 때가 얼마 전인데, 그 마음 온데간데없고 이제 내 걱정을 해달라고 하니 내가 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 철이 없는 건 정작 아이들이 아니고 어미인 나였단 말인가?      

마음이 문제였다. 내속으로 낳은 자식들 마음 쓰일까 봐 내 몸 아픈 것보다 더 신경이 쓰일 때는 언제고, 멀쩡히 씩씩한 아이들을 보니 고마워해야 할 일을 이젠 내 걱정도 해달라며 칭얼대고 있는 꼴이라니... 아이들이 헷갈릴 법도 하겠다.

그래도 내 마음이 그런 것을 어쩌랴.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인 것을 알지만 나도 토닥임이 필요했다. 한없이 쏟아부을 수 있을 것만 같던 자식사랑도 이제는 거꾸로 확인받고 싶고 쓰다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드니 어쩌랴.      



지난해 10CM가 넘게 훌쩍 자란 아들 녀석은 몇 달 전 나의 키를 넘어섰다.


“엄마! 내가 이제 엄마보다 커요!”

“그래, 네 키가 엄마보다 크다는 건 이젠 네가 엄마를 많이 안아줘야 된다는 거야.”


나는 아들 녀석의 겨드랑이 아래로 두 팔을 넣어 안겼다. 마냥 귀엽기만 하던 꼬맹이가 커다란 나무 같았다.

새싹 같던 아이들이 나무가 되고, 살랑대는 봄바람 같던 아이들이 한여름 소나기도 되었다가 엄동설한도 되었다가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엄마는 덩달아 마음이 오락가락인가 보다.      




BGM_내마음 갈 곳을 잃어_최백호

        _이정도_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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