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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Sep 15. 2019

이젠 안녕

이별을 맞이한 그대에게


나는 오른쪽 가슴이, 그녀는 왼쪽 가슴이 문제였다. 나는 수술 후 항암을 했고, 그녀는 선 항암을 한 후에 수술을 했다. 발병하기 20여 년 전 그녀와 나는 지금의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삶을 살다가 만난 우리가 친구가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늘 배려가 깊었고, 유난스럽지 않았으며, 따뜻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어쩌다 만나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눌 만큼 가까워진 우리는 그녀가 먼저 싱글맘이 되고 내가 후에 싱글맘이 되는 것으로 비슷한 색깔의 삶을 살게 되었다. 

내게 “우리는 용기 있었어.”라고 말해주던 그녀.

그런 그녀가 세상을 먼저 등지고 멀리 가버렸다. 내게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말이다.     


그녀가 먼저 아팠다. 나는 그런 그녀는 제대로 위로하는 법을 몰랐다. 그런 그녀는 괜찮다 했지만 괜찮지 않았고, 수술 후 1년 검진을 앞두고 재발하면서 다시 항암을 시작한 그녀는 재발한 지 1년 반쯤 지난여름 끝자락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세상을 뜨기 전 나는 수차례 전화를 걸었었다. 내가 여름휴가를 맞아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미안해서 시간을 내어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이 없었고, 마음이 상하면 연락을 안 받는 그녀의 습성을 아는지라 나는 또 그런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건 전화는 그녀가 아닌 큰아들이 받았다.     


“엄마가 전화했던데?”

“엄마가 오늘 돌아가셨어요...”     


소리 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허망한 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미 가고 없었고, 나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석양을 사랑하던 그녀를 기억하며 우는 일 밖에 다른 할 것이 없었다.      


빈소는 쓸쓸했고, 그녀가 가는 길은 조용했다. 남아있는 두 아들만이 그녀가 세상을 살다 간 흔적이었다.      

상을 치르고 돌아온 그녀의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모...”

“그래 잘 갔다 왔어?”

“네... 병원에 왔는데... 엄마가 없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래... 엄마가 없어. 집에 가도 없을 텐데... 어떡하니... 엄마가 없다...”     


그랬다. 우리가 슬픈 건 그녀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웃음도, 목소리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가버렸다. 

어디로 간 걸까? 그녀는 이제 안 아프니 웃고 있을까? 이렇게 빈자리를 슬퍼하는 우리를 보고 있을까? 마침 그녀가 가고 나서 한동안 하늘이 우울하고 바람이 많고 비가 내렸다. 

산울림을 좋아하던 그녀는 산울림의 노래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를 들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떠났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내겐 슬픔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녀가 힘들었던 걸 알았다면, 한 번만 더 보았더라면, 내가 찾아가겠다던 약속을 지켰더라면... 좀 덜 힘들었을까... 미안함에 가슴이 무너지고, 쉰둘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그녀가 안쓰러워 몇 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같이 살던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슬픔이었다. 그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사실 그녀는 내게 그저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내겐 친언니가 있지만 친언니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깊은 속내를 나누던 언니였다. 친언니가 서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언니가 좋았다.      


그녀가 떠나고 떠난 그녀를 위해 내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이 퉁퉁 붓게 울어도 보고, 그녀와 함께 가던 곳을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그게 그녀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살아있는 사람이 떠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간 사람을 좋게 기억하는 것 그것 말고 무엇이 있으랴...


그녀와 수없이 나눴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가끔 그녀가 세상에 남긴 두 아이의 안부를 챙기는 것쯤 될까? 그리고 그녀가 나누었던 사려 깊음과 배려 깊음을 대신하는 것. 그녀가 세상을 떠나며 가져간 촛불의 온기만큼 내가 누구에게라도 더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 내게 어떤 유언도 없이 떠난 그녀지만, 나는 사라진 그녀의 흔적을 내 삶에 따스함을 더하는 것으로 채우기로 했다. 슬픔이 있던 자리에 친절했던 그녀의 눈빛을, 무거웠던 나의 마음에 그녀 닮은 따스한 멜로디가 흐르게 하는 것. 내가 그녀를 보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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