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필요한 그대에게
가수 서유석 씨와의 인터뷰를 할 때였다.
워낙 라디오를 오래 진행한 분이어서 뭔가 라디오에 대한 철학이 있을 것 같아서 물었다.
“라디오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랬더니 역으로 질문이 들어온다.
“텔레비전은 눈으로 보는 매체죠. 그럼 라디오는 무얼로 듣습니까?”
“귀...로 듣죠..”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머뭇거리듯 겨우 했더니
“아니죠. 라디오는 가슴으로 듣는 거예요”
‘아...!!!’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렇지, 그거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내 생애 최고의 인터뷰!
나는 가슴으로 듣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직업이란 말인가..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을 부르는 호칭이 있다. 바로 프로그램에 ‘가족’이라는 명칭을 써서 부르는 것인데, 그렇게 부르면 더 친밀하게 느껴지고 어떤 소속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잘 통하면 코드가 잘 맞는다는 말을 한다. 이른바 공감코드!
청취자의 마음을 사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중 하나는 무조건 편을 들어주기!!
'당신이 맞다고, 얼마나 힘드냐고, 잘했다고...'
한 번은 “저녁에 뭐 먹죠? 오늘은 밥하기 정말 싫은데요...”라는 문자가 왔길래, “라면 드세요! 짜장면은 어때요?”라며 ‘밥하기 싫다’는 주부의 편을 들어줬더니 뜨거운 반응이 올라왔다. 그날 저녁 라면과 짜장면으로 저녁을 드신 분들이 여럿 있으리라.
내가 청취자의 편을 들어준 건 ‘무조건 편을 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편을 들기 전에 그분의 상황을 그려보고 그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일 마치고 돌아오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먹여야 ‘좋은 엄마’,‘좋은 아내’라는 사회가 만들어낸 그림 같은 그림. 그 그림 같은 그림이라는 멋진 그림을 가지려고, 제법 근사해 보이는 가치에 부응하려고, 싫어도 괜찮은 척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 우리네 많은 주부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귀찮게 느껴져서 하루쯤 건너뛰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왜? 나는 주부니까! 나 아니면 쫄쫄 굶을 식구들을 위해 손이 닳도록 삼시세끼 밥을 해대 봤으니까.. 뭐 먹지? 매일 같은 고민을 해 봤으니까 ‘오늘은 밥하기 정말 하기 싫은데..’라는 마음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폭풍 공감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공감은 같은 위치, 같은 상황이 됐을 때 가능하다. 동병상련이라 하지 않았던가. 같은 병을 앓아봐야 그 아픔을 알고, 같은 시련을 겪어봐야 그 고통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아도 내 것처럼 아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감력이 탑재된 사람들이다. 바라만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닌, 상상 속으로나마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나라면 어땠을까..’하며 깊이 그 상황을 이해하는 것. '그 상황에서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 나라도 그랬겠다!'가 되어보는 것.
깊은 공감의 시작은 고개를 끄덕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