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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Aug 24. 2019

사랑해도 될까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그대에게

얼마 전 아끼는 후배 아나운서가 결혼을 했다. 

원래도 예쁜 친구지만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도 밝아지고, 표정도 더 밝아지더니 좋은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좀처럼 말이 없는 그녀의 sns에 선물 받은 꽃다발 사진이 올라오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눈치를 채기는 했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말이다. 어느 날은 나란히 찍은 발이 올라왔고, 결국 짜짠 하고 예비남편의 얼굴을 공개하더니 머지않아 야외 촬영 사진이 화보처럼 올라왔다.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며 그녀의 행복에 더불어 가슴이 설레고 기뻤다.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전해지고, 덩달아 기분 좋게 하는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결혼식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그녀는 결혼 전에 전해줄 것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 기꺼이 달려 나간 그 자리에 청첩장과 함께 책을 내미는 그녀, 내 생각이 나서 골랐다며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을 선물했고, 당당한 미셸의 모습이 나와 닮은 것 같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말도 안 되는 칭찬이지만 기분 좋게 받아 들고는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는데, 설렘과 걱정이 섞인 그녀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결혼 전에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어보라는 나의 제안에 그녀는 예비신랑과의 약속을 공개했다. 

“제가 그랬어요. 결혼해도 일요일은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자고요. 낮에는 뭘 하든 뭘 먹든 서로 신경 안 쓰기로 하고 따로 떨어져 있는 거죠. 오전부터 오후까지 혼자 하고 싶은 거 하다가 4시에 만나서 저녁은 같이 먹는 거예요!”

“히야~ 그거 너무 괜찮은 약속이다!! 완전 멋진데?!! 늘 연애하는 기분이겠네!!”

알콩달콩 그녀의 야무진 계획에 덩달아 흥분이 되었다.     


또 다른 예비신부를 만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녀는 예비남편과 이런 약속을 했다고 한다. 

“혹시 싸워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날 밤은 안 넘기려고요. 그래서 우리가 잘 가는 떡볶이 집이 있는데 싸운 날엔 서로 피했다가도 그날 밤엔 무조건 떡볶이 집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어머! 너무 재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정말 좋은 아이디언데?”

연애기간이 길었다는 그녀는 싸워도 보고 화해도 해보면서 싸움이 길어져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는 게 설명이다. 참고 말 안 하는 방법도 최선이 아니고, 불처럼 활활 타올라 싸워봤자 남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단다. ‘나는 이런데 너는 어떠냐?’라며 서로의 입장을 말하고 이해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는 거다. 

이 얼마나 현명한 커플이란 말인가!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보는 내내 엄마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냥 늘 하던 데이트 코스 탐방과 맛집 투어만으로는 둘 사이를 깊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인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자녀 양육관은 어떤지 코드가 맞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두 명의 예비신부와는 정반대의 경우인 친구가 있었다.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그녀는 결혼을 한 후에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를 안 낳고 싶어. 좋은 아빠의 모습을 못 보고 커서 아이를 낳아도 좋은 아빠가 될 자신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냥 둘이서 살자.”

자신의 계획과는 사뭇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은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말을 듣고 친구는 너무 황당했다고 한다. 자신은 당당하게 아이를 낳아 가정을 만들고 싶어서 선택한 결혼인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하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그럴 생각이었으면 결혼 전에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친구의 볼멘소리가 웃픈(웃기고도 슬픈) 이유는 우리는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생각보다 대화를 잘하지 못한다. 

카페를 가도, 식당을 가도, 깊은 밤 술집에 가도, 온통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넘쳐나지만, 정작 해야 할 말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웃고 마시며 나눈 말들은 공기 속으로 기화해 버리듯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소란했던 자리일수록 뒤돌아선 자리가 허탈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하기, 위로가 되는 한마디, 가만히 들어주는 귀 기울임과 무조건적 수용의 미덕이 빛나는 이유도, 우리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가벼운 말의 주고받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상 속 소소한 대화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가 없다. 때로는 굳이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고도 나눌 수 있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부담 없고 좋을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곁을 내어주고 내 영역으로 누군가를 허락하는 일에는 대화를 통한 서로를 알아감이 필수일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스며들고 번지려면 거짓됨이 없어야 하고 억지스러움이 없어야 한다.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사이라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하려 할 사람이라면 큰 그림을 함께 그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면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바닥이 쿵하면 짝하는 그런 사이이면 좋겠지만, 쿵작이 맞지 않아도 상대의 쿵을 쿵으로, 짝하면 쩍 하고 라도 호응을 보이거나  받아들일 마음가짐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이었다. 겨울이면 화천 산천어 축제장에서 울려 퍼지는 라디오 DJ가 되는 나는 그날도 얼음나라 방송국을 진행하고 있었다. 얼음나라 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방송은 겨울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을 위해 신청곡도 틀어주고 퀴즈도 풀어가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하루는 ‘커플’이라는 주제로 사진 문자를 받고 있었는데, 다양한 사진들이 올라오다가 눈에 확 띄는 커플이 있어서 포토제닉 상을 주고 상품을 받으러 오라고 발표를 했다. 상품의 주인공이 된 커플은 노란색 오리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에 움직이는 토끼 모자가 전국을 강타해 아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었는데, 하얀 토끼 모자가 아닌 노란 오리 모자를 쓴 커플은 결혼한 지 몇 달 안 된 신혼부부였던 것이다. 

스튜디오를 찾아온 커플을 카메라 앞에 앉혀놓고 잠깐의 인터뷰를 나누었다. 


“그 오리 모자는 누구 의견이었나요?”

“신랑이 지나가는 길에 토끼는 너무 흔하니까 오리 모자로 하자고 해서 샀어요.”

“남편분이 그런 제안을 했을 때, 혹시 썩 내키지 않거나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아뇨,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어요.”


찰떡궁합이다! 이런 걸 두고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도 한다.

그날의 인터뷰는 머리에 쓴 오리 모자의 입을 맞추며 앙드레김 버전의 엔딩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코믹하고 사랑스럽게 마무리를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물하며 마무리 지었다. 

오리 커플을 보내고 나서도 한참을 훈훈한 기운이 감돌던 스튜디오. 저 커플 참 잘 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커플을 보면 같은 영혼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yes라고 할 때 상대도 늘 yes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다. 

내가 yes라고 할 때 상대가 no 여도 괜찮다.

‘그렇구나. 당신은 yes구나’라고 수용해주고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너의  yes는 틀려!’가 아니라 나와 다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끄덕임과

나의 방식과 다를지라도 네가 원한다면(if you want) 나는 괜찮아 (I’m okay.)

서로를 옭아매는 게 사랑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봐 주며, 응원해주고 지지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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