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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Jun 15. 2019

위풍당당

자존감과 담을 쌓은 그대에게

나는 나를 좋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딱히 칭찬받을 만큼 잘하는 것도 없고, 딱히 눈에 띄게 예쁜 것도 아니고... 내 어린 시절은 줄곧 그런 모습이었다. 나는 순한 아이로 자랐고, 어른이 되어도 착한 것은 알았지만 그게 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좋아하려면 내게 좀 더 확실한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보아왔던 예쁨 받는 아이들의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예쁨 받는 공식이라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그랬고, 눈에 띄게 예쁜 아이들이 그랬다. 사랑받는 이유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고 모든 게 익숙했다. 그리고 그런 익숙함은 자존감의 부재를 낳았다. 하지만 그런 익숙함이 내가 바란 것은 아니었으리라.      

오랜 시간 내 눈엔 늘 나의 단점만 보였고, 탐탁지 않은 게 일상이 되면서 나를 좋아하고 아끼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성장하게 되었다. 그저 보통의 아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중간이라도 가려고 가만히 있었던 날들... 그러니 온전히 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데는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음을 말이다. 가끔은 튀고 싶었고, 두드러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그 무엇을 드러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교육받고 강요받았기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다움을 발견하고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 그 귀한 작업은 사람마다 제각각 일 것이다. 누군가는 유독 자기애가 강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아끼는 법을 알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전보다 더 나와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나와 동행하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면서 나를 좋아하는 법을 학습해 가는 중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한 번은 ‘나는 내가 너무 좋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분을 만났다. 사실 그분은 그냥 평범한 50대 중년의 주부였다. 크게 세련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느낌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그 모습이 수수하고 수수하여 오일 파스타보다는 부침개를 잘 만들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그녀는 손을 가슴에 올리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좋아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아무도 그녀를 대충 대하거나 막 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뜻의 ‘근자감’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에겐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데서 오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나 자신이 좋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그게 맞는 거였다. 내가 나를 좋아해야 하는 게 옳은 거였다. 우선되어야 했다. 그동안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타인으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해도 크게 자극이 되지 않았고,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그 어떤 외부의 힘도 부당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자존감이 태어나는 순간 안고 태어나는 게 아니니 조금 늦었지만 괜찮다. 아니 많이 늦었지만 평생 모르고 가는 게 아니니 다행이다. 철이 늦게 들지만 평생 철들지 못해 보고 가는 것보다 낫듯이 말이다.      


우리는 내가 가진 그 모든 것에 자연스러워지고 당당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얼마나 건강한 것인지, 그 마음의 건강함이 당당한 근거가 되고 자신감이 될 테니 말이다.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는 한동안 사람들의 손가락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의 자서전 becoming을 보면 그녀는 다소 체격이 있는 그녀의 몸 때문에 '너무 크고, 너무 강하고, 남자의 기를 죽이려 드는, 고질라 같은 여자'라는 비난을 선거기간 내내 들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오바마의 베이비 마마(남편이나 애인이 아닌 남자의 아기를 낳은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얼마나 폭력적인지... 듣는 나도 이렇게 아픈데 그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나 그녀는 승리했다. 단단했던 그녀의 자존감이, 그런 그녀를 사랑한 오바마의 존재가 그 모든 것을 사라지게 했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아껴주기. 그리고 나를 제법 괜찮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을 곁에 두기. 때로는 전쟁 같은 삶이라 느껴질 때,  지친 하루를 숨 쉬게 하고 또 하루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추천BGM_ Natalie Merchant_Life is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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