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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희 Jun 24. 2019

꿈을 꾼다

가슴이 펄럭이는 그대에게

고등학교 시절. 나는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연극영화과로 진학을 하고 싶었다. 물론 부모님은 ‘딴따라’는 안 된다며 희망의 싹을 잘라 놓으셨다. 나는 착한 아이라 곱게 말을 들었다.      



엄하신 부모님께 연기를 하겠다는 고집을 부리지는 못했지만 친구나 선생님에게는 나의 희망사항을 말할 수 있었다. 한때 수학선생님이 좋아서 수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열심히 할 때가 있었는데 그즈음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며 진로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나의 장래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저요? 저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연극? 연극이면 연출?”

“아니, 배우요.”

“연극을 할 거면 연출을 해야지!”     

단호한 선생님의 말씀에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연출이 아의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것이다. 소심이 습관이 됐다. 그렇게 또 꿈을 접고 숨기기를 쉽사리 했다. 응원받지 못하는 꿈은 가치 없이 느껴지고 바람 앞의 촛불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한없이 나약하고 어린 십 대가 꿈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아서만은 아닌 것 같다. 꿈을 찾았어도 그 꿈이 응원받지 못하고 박수받지 못하는 일임을 미리 알고 접어버리는 일이 허다하지 않을까. 내 어린 날처럼 말이다. 

꿈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리고 자그마한 나의 소망쯤은 부끄럽게 느껴져서 말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이걸 꿈이라고 할까? 말까?’ 나의 꿈이 손가락질당할까 봐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꿈이라고 하면 남 보기에 그럴싸한 한마디로 폼나는 그 무엇을 정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있지 않은가. 우린 그렇게 교육받았고 길들여졌다. 그래서 어릴 적 꿈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옆집 건너 하나씩 대통령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자식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면 말릴 판이다. 세상이 변했다.      


언젠가 백상 예술 시상식에서 무명배우들이 무대를 채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두 명씩 나와 ‘꿈을 꾼다’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데, 이들의 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레드카펫 주인공들이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알 만한 사람들, 이른바 스타 대군들이 무명의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를 지켜보고 있었고, 스타들 중 몇몇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때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괜히 웃음이 나와     

정신없는 하루 끝에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지나간 추억을 뒤돌아보면

입가엔 미소만 흘러     

꿈을 꾼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혹시 너무 힘이 들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천천히 함께 갈 수 있다면

이미 충분하니까     

자꾸 못나 보이는 나 

맘에 들지 않는 오늘도

내일의 나를 숨 쉬게 하는 

소중한 힘이 될 거야     


이내 무대는 와르르 몰려나오는 무명 군단으로 가득 찼다. 어린 꼬마부터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무명 배우들... 그들은 배우라는 이름이 좋아서 자신의 길을 담담히 갈 것이라는 인터뷰 영상을 배경으로 그들 자신을 꼭 닮은 노래를 끝까지 불렀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나는 덩달아 콧잔등이 시큰하더니 결국 눈물이 흘렀다.      


꿈꾸었던 배우가 되지 못한 채로 40대가 된 후에도 가끔 불씨 같은 것이 미련처럼 남아 그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나 연극 안 하길 잘했다 싶어.” 

“왜? 했으면 지금 한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데!”

절친에게 뜬금없는 고백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들었다. 역시 내 친구다. 친구 하나는 기막히게 잘 두었다. 이렇게 응원에는 힘이 있다. 밥심이라고 하는 것처럼 응원이 말밥이 되어 듣는 사람에게 힘을 준다. 이런 전폭적인 지지를 어디에서 받을 수 있으랴. 

늘 말없이 바라봐 주고, 응원이 필요한 순간엔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그런 친구다. 오리를 날게 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월담을 하게 만들어주는 친구. 충고가 필요할 때면 조심스레 다가오고, 위로가 필요할 때면 곁을 지켜주는 친구. 흔들리지 않고 내가 삶을 잘 견뎌올 수 있었던 건 때론 나침반 같고 때론, 치어걸 같은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마냥 안쓰럽다. 박수가 필요했던 아이에게 비난과 질타와 무관심이 주 종목이었으니 새싹은 자랄 턱이 없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누구라도 꿈의 크고 작음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한걸음 뒤에서 바라봐주는 것,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기꺼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나이가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 ‘그 나이에 무슨 꿈이 있겠어?’하고 말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어린 나이에는 눈치 보느라 못 꾸던 꿈을 이제는 아랑곳 않고 꿈을 꾼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이유가 항구밖에 분명 있지 않겠는가? 가슴이 펄럭일 때 그 펄럭임을 따라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BGM_꿈을 꾼다_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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